나라마다 음악의 맛이 다른 건 아마 언어가 다른 이유가 가장 클 것이다. 언어에 따라 정말로 뉘앙스와 어울리는 장르의 음악이 확확 바뀌는 걸 의식하고 비교해서 듣다 보면 정말 언어와 음악을 밀접한 관계라는 걸 새삼 깨닫곤 한다. 그래서인지 언어를 잘 사용하는 아티스트들을 보면 분명 그들만의 유니크한 색이 느껴지곤 한다.
그리고 b!ni(비니!)도 바로 그런 사람 중 하나다.
Q. 자기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A. b!ni : 저는 b!ni(비니!) 라는 활동명으로 싱어송라이터를 하고 있는, 본명 홍혜원이라고 합니다!
Q. 얼마 전에 두번째 미니앨범 [멋진사이]가 발표되었어요. 일단 앨범 커버가 너무 눈에 띄어서 바로 각인이 됐어요.😄 교보문고 홈페이지에 들어온 줄 알았다니까요. 그런 만큼 수록된 각각의 곡들이 어떤 흐름으로 이야기가 연결되어 있는지 집중해서 듣게 되더라고요. 이 앨범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해주세요.
A. b!ni : 그렇게 생각하고 들어 주셨다는 게 너무 감동이에요. 저는 책을 구경하다가 느낌이 오면 사는 수준으로 소비하는 편인데 한 번은 서점에 진짜 사기 싫은 책이 거예요. 표지도 너무 별로이고 제목이 '너를 위한 ~한 조언' 같은 느낌이었어요. 책을 열 때마다 한 줄씩 위로 문구나 영감을 주는 위인의 명언 한 줄이 써있는데 너무 사기 싫은 마음이 오히려 재미있게 느껴지는 거예요. 그래서 샀어요.😄 '진짜 이걸로 위로 안 받아' 했는데 제가 진짜 힘들 때 한 번 열어 봤거든요. 아이슈타인의 어떤 한 줄이 나왔는데 너무 좋은 말인 거예요. 그게 너무 느낌이 좋고 부담 없이 열어볼 수 있는 책이라는 점이 좋다는 느낌을 한 번 받았어요. 이번 [멋진사이] 앨범은 책처럼 열어볼 순 없지만 그 책처럼 갈피를 잃었을 때 부담 없이 열어볼 수 있는 책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곡들도 일종의 목차처럼 순서대로 이야기가 이어지는 느낌이 있고 한 테마로 얘기하고 있어요. 그래서 앨범커버도 너무 어렵지 않게 베스트셀러 느낌으로 디자인해서 만들었어요.
흐름을 얘기하자면 미니앨범이라는 단어가 귀여운데 제가 '비니!'기도 해서 '미니, 비니, 귀엽다'라는 생각을 했어요. 미니앨범이라 함은 제 생각엔 인트로와 아웃트로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야 진짜 앨범 느낌이니까. 앨범에서 얘기하는 의미가 한 줄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쌓아놓은 곡들은 많지만 딱히 앨범을 낼 계획이 있던 게 아니었거든요. 어떻게 하고 싶은 말을 할지 고민을 했어요. 아웃트로 직전에 '패스트푸드'라는 곡이 수록되어 있는데 제가 작년 1년 동안 힘든 시기를 겪을 때 그 기간에 하고 싶던 말과 결론이었거든요, 그 곡의 주제가. 허무하고 의미 없고, 이런 식으로 결론을 내고 그 세상에 작년 내내 빠져 있었는데 그러다 보니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이걸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그걸 테마로 앨범을 마무리하려고 하다가 작년 말 정도에 생각이 바뀌었어요. 저는 솔직히 사람에 대한 기대가 많이 없는 편이라 사람에 의해서 내가 빠져 있는 깊은 곳에서 끌어내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의외의 사람이 저를 구해줬어요. 그 사람도 저를 일부러 구해주려고 한 건 아닌데 생각해보니까 내가 하고 싶은 한 줄은 '패스트푸드'에서 끝나지 않고 그 사람이 오면서 '나 지금 이 말이 되게 하고 싶어'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래서 원래는 '패스트푸드'로 끝나야 해서 다음에 아웃트로가 나오고 마무리되는 거였는데 그 다음에 '멋진사이'라는 곡이 나오면서 이 앨범이 완성이 되었고 이번 앨범이 가진 큰 주제여서 앨범의 이름이 되었어요.
Q. 두 개의 타이틀곡 '대출'과 '쫌!'은 어떻게 만들어진 곡인가요?
A. b!ni : 일단 '대출'은 앨범에서 가장 최근에 만든 곡이에요. 나머지 곡들은 엄청 오래전에 쓴 것도 있는데 '쫌!'이 제일 오래 됐을 거예요. 노래를 할 때 뻔한 사랑 얘기는 하기 싫어하는 이상한 기질이 저한테 있는데😄 근데 사랑에 비유는 됐으면 하는 욕심은 또 있었어요. 사랑이 아예 안 들어가는 것도 멋있을 것 같기도 했고요.
사람들은 세상에 관심이 많으니까 세상에 대한 얘기를 담으면 재미있을 것 같았어요. 제가 느끼는, 앞으로도 변할 것 같지 않은 제가 생각하는 세상에 관해 써 내려갔던 글들을 모아서 곡으로 만들었어요. 그렇게 하니까 생각보다 내용이 지저분했는데 그게 진짜 최대한 쉽게 쓴 결과물이었어요. 철학자 한병철이란 분이 계신데 제가 유일하게 모든 책을 끝까지 다 읽었던 작가님이에요. 그분이 책에서 얘기하는 바가 사회가 과하게 발전한 부분이 있고 그것에 대해서 꼬집는 내용이 많은 느낌이었어요. 예시로 액정의 화소 수가 이미 사람이 볼 수 있는 능력보다 그 이상으로 발전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거든요. 그럼 그 기술은 쓸데없는 기술 이잖아요. 거기서 오는 이상한 느낌이 있었는데 말로는 표현을 못 하겠는 거예요. 책을 볼 때마다 해소는 되지만 음악 하는 사람으로서 내가 느낀 점을 멋진 비유나 말투로 담아보면 재미있겠다고 생각 했어요. 그래서 '쫌!'이라는 말투를 가져와서 담아봤어요. 어딘가 과한 것 같은 부분들에 대해서 '이게 뭘까?'라는 물음표를 담은 곡이에요.
우리나라가 눈치를 많이 보잖아요. 좋은 점이나 나쁜 점은 아니지만 그것 때문에 있는 현상이 사람들이 다들 옷을 너무 잘 입는 거예요. 그것도 스타일이 다들 비슷한데 잘 입어요. 저는 합정이나 홍대, 이태원 등의 메인 스트리트에서 그런 걸 볼 때 소름 돋을 때가 있거든요. 나도 그 일부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훅 부분에 사람들이 옷을 '쫌!' 더 못 입었으면 좋겠고 화질도 지금보다 대단하게 더 좋아져서 비싸게 팔고 할 없을 것 같은데, 하는 생각들을 담았어요.
Q. 전 곡의 사운드가 완전히 통일되어 있어서 진짜 전체가 하나인 것처럼 들었어요. 곡들의 길이도 짧은 편이라 금방 다 듣기에도 수월 했고요. 예전 앨범들부터 일관된 색채를 보여주고 있는데 좋아하는 음악적인 방향이 확실하게 있기 때문일까요?
A. b!ni : 저도 그것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는데 계속 제가 좋아했던 음악들이 있어서 그 음악들과 비슷했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있어요. 그렇다 보니 비트, 멜로디, 믹스 등에 대해 고민이 많긴 해요. 음악적인 색채를 만드는 저의 보컬, 가사, 멜로디, 비트 등에 확실히 제가 원하는 색이 있어요.
Q. 가사를 잘 활용하는 느낌이 들어요. 특히 이번 앨범에서는 '서로의 장례식 축하해주는 사이'라니.😄 이전의 앨범들에서도 최근 들은 아티스트들 중에서 말 그대로 '한글'을 가장 잘 활용하는 느낌을 받았어요. 가사적으로 신경 쓰는 부분은 어떤 것들인가요?
A. b!ni : 음악을 하는 동료들이 많아지다 보니 그들을 보면 음악을 잘해서, 목소리가 예쁘고 악기를 잘해서, 아니면 컴퓨터를 잘해서 시작을 했더라고요. 저는 음악을 수다쟁이라서 시작했단 말이에요. 음악을 늦게 시작했는데 그래서 계속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할 말이 없으면 할 게 없거든요, 할 이유도 없고.
그래서 가사에 힘을 많이 주는 편인데 할 말이 많아도 주절주절 말하면 아무도 안 듣게 되니까 꼭 정리하고 말을 하려고 해요. 글을 쓸 때 일기를 많이 쓰고 그게 저의 정신 없는 것을 정리하는 방식이에요. 일기를 초등학교 때부터 썼는데 제 맘대로 쓰는 글에 익숙해요. 누군가에게 말하듯이 써요. 그렇게 글이랑 친해진 사이고 쓰다 보면 예쁘게 쓰고 싶어서 예쁜 문장, 단어를 찾다 보니 운율이 생기는 게 있더라고요. 글의 덩어리들이 길게 쓰고 가사로 바꾸고 싶은 욕심이 나면 스토리 대로 조각하듯이 시처럼 줄여요. 그 다음에 최대한 카톡 말투를 집어넣어요. 가사의 좋은 점은 사람이 말을 하는 말투를 담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카톡도 사람마다 말투가 있는 건데 음악은 시와 그 중간에 있는 느낌이에요. 그래서 제가 많이 영향을 받은 아티스트들은 한글을 너무 잘 쓰는 사람들인데 저도 그런 느낌을 넣으려고 노력하면서 깎아가며 쓰는 편이에요.
Q. 얘기가 나온 김에 이번 앨범명과 동명인 마지막 트랙 '멋진사이'는 어떤 곡인지 알려주세요.
A. b!ni : '멋진사이'는 친구, 부모, 아빠, 엄마, 이런 것들을 관계에 대한 이름과 호칭 이잖아요. 제가 앞서 말했던 사람에 대한 얘긴데 저를 힘들 때 구해줬다고 느낀 사람이 어떤 특별한 관계가 아니었거든요. 굳이 얘기하자면 동료이기도 하고 친구이기도 한 그런 사람인데 그 호칭들이 그 사람을 다 담지를 못하더라고요. 친구 이상이고 동료 이상인데 그렇다고 연인은 아니고 이런 느낌을 생각해보니 이 사람이 아니어도 종종 느끼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내가 감사함을 몰랐고 그 관계들이 가진 힘을 무시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그 관계들에 이름을 지어줬고 그게 '멋진사이'예요. 앞으로 그런 사이에게 '멋진사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자 싶어요. 이 앨범도 보이지 않는 빚을 지면서 많은 도움과 열정과 저를 믿어주는 믿음들이 모여서 만든 앨범이거든요.
특히 가사를 얘기하자면 '장례식'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는 게 '내가 음악을 왜 해야 하지?'라는 고민을 다들 할 텐데 저는 나중에 실버타운에 가서 할머니, 할아버지 모여 '내가 왕년에 음악 했잖아, 가사 잘 썼지?'하는 대화가 재미있을 것 같거든요. '멋진사이'라고 했던 사람들은 어떤 나이 차이든 어떤 직종이든 삶이 끝나가는 순간에도 재미있는 이야깃거리가 생길 것 같아요. 그게 제가 얻는 가장 큰 것이에요. 진심으로 서로의 장례식을 축하해줄 수 있는 사이라고 생각해요. 진짜 행복했으면 좋겠고 죽어도 잘 죽었으면 하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멋진사이'라고 정의 내린 사람을 생각했을 때 누군가 우울하다고 얘기했을 때 밝은 곳으로 끄집어 올려주는 느낌보다는 나도 내려가서 '나도 여기 있어'라는 얘기를 할 수 있는, 그걸 웃으면서 개그칠 수 있는 블랙코미디가 먹히는 사이인 것 같아요. 그런 사이에 대한 가사들을 넣었어요.
Q. 개인적으로는 이전에 나왔던 '나너..'를 가장 많이 들었어요. 댄서블하면서 가사적으로 재미있고 리듬감 있는 보컬이 정말 좋더라고요. 음악생활을 하는 동안 본인이 작업한 음악 중에 가장 아끼는 곡은 어떤 곡일까요?
A. b!ni : 모든 곡들을 아끼지만 [나너도기] 앨범이 제일 내고 싶던 곡들었어요. 첫 홀로서기여서 과정 중에 아쉬운 점이 있기는 하지만 곡들을 냈을 때의 기분을 잊을 수 없고 너무너무 내고 싶던 곡들이어서 이 2곡을 너무 아껴요. 다음에 나온 곡들도 다 아끼지만 정리해서 낸 게 [멋진사이] 앨범이에요. 그리고 저는 '꼬리고기'도 매우 아낍니다.
Q. 이전에 딩고의 라이징벌스 콘텐츠에 나가셨잖아요? 인상적인 경험이었을 것 같은데 당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A. b!ni : 인디펜던트가 되고 첫 스케줄이었어요. 딩고에서 라이징벌스 콘텐츠에 한 자리 비어 있다고 연락이 왔고 완전 친한 친구 한 명만 데리고 갔어요. 혼자 활동을 하려고 운전을 막 배우기 시작할 때여서 초보운전임에도 '운전, 되겠지 뭐~'하면서 갔어요. 그런데 다른 출연자 두 분이 같이 온 관계자들이 엄청 많은 거예요. 친구랑 초라하게 살짝 기죽는 느낌으로 있었는데 그래도 뿌듯한 것도 있었고 PD 님이 저를 응원해 주시는 게 느껴져서 열심히 했어요. 아쉬움도 있고 긴장도 뿌듯함도 게이지가 아주 풀로 찼던 기억이 나요. 너무 뿌듯해요. 앞으로의 인디펜던트 생활에서도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Q. 영향을 받은 아티스트는 누구일까요?
A. b!ni : 아이유 님 가사를 좋아해요. 제 10대에 아이유 님이 가사에 힘을 주기 시작할 때일 거예요. 음악이 유일한 출구인 갇혀있는 십대에 가사가 너무 충격적이었어요. 자이언티, 크러시, 딘 등이 한창 활동을 할 때여서 많이 들었어요. 고등학교 때 제일 힘들 때 그 음악들에 영향을 크게 받았어요. 입체적으로 다 멋있던 건 빈지노였어요. 다이나믹 듀오도 크게 영향을 받았어요.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은 건 아이유, 빈지노, 자이언티 이렇게 세 팀이에요.
내가 이 사람들의 음악을 듣고 얼마나 큰 위로를 받고 큰 전율을 느꼈는가를 기억하면 이 음악들에서 벗어나기보다 이 음악을 어떻게 만들었나 하는 연구로 이어지는 것 같아요. 이들의 공통점은 가사가 기깔나고 한국말을 잘 쓴다는 것에 영향을 받았어요. 자이언티, 빈지노의 트랙이 너무 좋았는데 두 분다 뒤에 Peejay 님이 계시잖아요. Peejay 님의 트랙에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아요.
Q. 향후의 계획은?
A. b!ni : 어떻게든 음악하고 살기. '이짜나'라는 곡이 토요일에 새 싱글로 나와 있을 겁니다.😄 [멋진사이]부터 시작해서 앨범커버나 참여진들이 제가 원하는 방향성으로 많이 이끌어낸 앨범이에요. 제목이 '이짜나'이로 래퍼 오르내림이 피처링을 해주셨어요. 프로듀싱을 L-like 언니가 참여해줬어요. 진짜 고마운 사람들이 많아요. 이 곡은 최대한 이전의 '수선'이나 L-like언니랑 전에 작업한 '살금'같은 곡을 좋아하는 분들은 위한 이지한 곡입니다. 이번 앨범 계획은 릴스를 질리도록 올리는 게 계획입니다.😄 이렇게 인터뷰 한 것도 있고. 작고 크게 만드는 라이브 콘텐츠도 있을 예정입니다.
우리 서로의 장례식 축하해 주는 멋진 사이가 되면 안 될까
나라마다 음악의 맛이 다른 건 아마 언어가 다른 이유가 가장 클 것이다. 언어에 따라 정말로 뉘앙스와 어울리는 장르의 음악이 확확 바뀌는 걸 의식하고 비교해서 듣다 보면 정말 언어와 음악을 밀접한 관계라는 걸 새삼 깨닫곤 한다. 그래서인지 언어를 잘 사용하는 아티스트들을 보면 분명 그들만의 유니크한 색이 느껴지곤 한다.
그리고 b!ni(비니!)도 바로 그런 사람 중 하나다.
Q. 자기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A. b!ni : 저는 b!ni(비니!) 라는 활동명으로 싱어송라이터를 하고 있는, 본명 홍혜원이라고 합니다!
Q. 얼마 전에 두번째 미니앨범 [멋진사이]가 발표되었어요. 일단 앨범 커버가 너무 눈에 띄어서 바로 각인이 됐어요.😄 교보문고 홈페이지에 들어온 줄 알았다니까요. 그런 만큼 수록된 각각의 곡들이 어떤 흐름으로 이야기가 연결되어 있는지 집중해서 듣게 되더라고요. 이 앨범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해주세요.
A. b!ni : 그렇게 생각하고 들어 주셨다는 게 너무 감동이에요. 저는 책을 구경하다가 느낌이 오면 사는 수준으로 소비하는 편인데 한 번은 서점에 진짜 사기 싫은 책이 거예요. 표지도 너무 별로이고 제목이 '너를 위한 ~한 조언' 같은 느낌이었어요. 책을 열 때마다 한 줄씩 위로 문구나 영감을 주는 위인의 명언 한 줄이 써있는데 너무 사기 싫은 마음이 오히려 재미있게 느껴지는 거예요. 그래서 샀어요.😄 '진짜 이걸로 위로 안 받아' 했는데 제가 진짜 힘들 때 한 번 열어 봤거든요. 아이슈타인의 어떤 한 줄이 나왔는데 너무 좋은 말인 거예요. 그게 너무 느낌이 좋고 부담 없이 열어볼 수 있는 책이라는 점이 좋다는 느낌을 한 번 받았어요. 이번 [멋진사이] 앨범은 책처럼 열어볼 순 없지만 그 책처럼 갈피를 잃었을 때 부담 없이 열어볼 수 있는 책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곡들도 일종의 목차처럼 순서대로 이야기가 이어지는 느낌이 있고 한 테마로 얘기하고 있어요. 그래서 앨범커버도 너무 어렵지 않게 베스트셀러 느낌으로 디자인해서 만들었어요.
흐름을 얘기하자면 미니앨범이라는 단어가 귀여운데 제가 '비니!'기도 해서 '미니, 비니, 귀엽다'라는 생각을 했어요. 미니앨범이라 함은 제 생각엔 인트로와 아웃트로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야 진짜 앨범 느낌이니까. 앨범에서 얘기하는 의미가 한 줄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쌓아놓은 곡들은 많지만 딱히 앨범을 낼 계획이 있던 게 아니었거든요. 어떻게 하고 싶은 말을 할지 고민을 했어요. 아웃트로 직전에 '패스트푸드'라는 곡이 수록되어 있는데 제가 작년 1년 동안 힘든 시기를 겪을 때 그 기간에 하고 싶던 말과 결론이었거든요, 그 곡의 주제가. 허무하고 의미 없고, 이런 식으로 결론을 내고 그 세상에 작년 내내 빠져 있었는데 그러다 보니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이걸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그걸 테마로 앨범을 마무리하려고 하다가 작년 말 정도에 생각이 바뀌었어요. 저는 솔직히 사람에 대한 기대가 많이 없는 편이라 사람에 의해서 내가 빠져 있는 깊은 곳에서 끌어내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의외의 사람이 저를 구해줬어요. 그 사람도 저를 일부러 구해주려고 한 건 아닌데 생각해보니까 내가 하고 싶은 한 줄은 '패스트푸드'에서 끝나지 않고 그 사람이 오면서 '나 지금 이 말이 되게 하고 싶어'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래서 원래는 '패스트푸드'로 끝나야 해서 다음에 아웃트로가 나오고 마무리되는 거였는데 그 다음에 '멋진사이'라는 곡이 나오면서 이 앨범이 완성이 되었고 이번 앨범이 가진 큰 주제여서 앨범의 이름이 되었어요.
Q. 두 개의 타이틀곡 '대출'과 '쫌!'은 어떻게 만들어진 곡인가요?
A. b!ni : 일단 '대출'은 앨범에서 가장 최근에 만든 곡이에요. 나머지 곡들은 엄청 오래전에 쓴 것도 있는데 '쫌!'이 제일 오래 됐을 거예요. 노래를 할 때 뻔한 사랑 얘기는 하기 싫어하는 이상한 기질이 저한테 있는데😄 근데 사랑에 비유는 됐으면 하는 욕심은 또 있었어요. 사랑이 아예 안 들어가는 것도 멋있을 것 같기도 했고요.
사람들은 세상에 관심이 많으니까 세상에 대한 얘기를 담으면 재미있을 것 같았어요. 제가 느끼는, 앞으로도 변할 것 같지 않은 제가 생각하는 세상에 관해 써 내려갔던 글들을 모아서 곡으로 만들었어요. 그렇게 하니까 생각보다 내용이 지저분했는데 그게 진짜 최대한 쉽게 쓴 결과물이었어요. 철학자 한병철이란 분이 계신데 제가 유일하게 모든 책을 끝까지 다 읽었던 작가님이에요. 그분이 책에서 얘기하는 바가 사회가 과하게 발전한 부분이 있고 그것에 대해서 꼬집는 내용이 많은 느낌이었어요. 예시로 액정의 화소 수가 이미 사람이 볼 수 있는 능력보다 그 이상으로 발전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거든요. 그럼 그 기술은 쓸데없는 기술 이잖아요. 거기서 오는 이상한 느낌이 있었는데 말로는 표현을 못 하겠는 거예요. 책을 볼 때마다 해소는 되지만 음악 하는 사람으로서 내가 느낀 점을 멋진 비유나 말투로 담아보면 재미있겠다고 생각 했어요. 그래서 '쫌!'이라는 말투를 가져와서 담아봤어요. 어딘가 과한 것 같은 부분들에 대해서 '이게 뭘까?'라는 물음표를 담은 곡이에요.
우리나라가 눈치를 많이 보잖아요. 좋은 점이나 나쁜 점은 아니지만 그것 때문에 있는 현상이 사람들이 다들 옷을 너무 잘 입는 거예요. 그것도 스타일이 다들 비슷한데 잘 입어요. 저는 합정이나 홍대, 이태원 등의 메인 스트리트에서 그런 걸 볼 때 소름 돋을 때가 있거든요. 나도 그 일부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훅 부분에 사람들이 옷을 '쫌!' 더 못 입었으면 좋겠고 화질도 지금보다 대단하게 더 좋아져서 비싸게 팔고 할 없을 것 같은데, 하는 생각들을 담았어요.
Q. 전 곡의 사운드가 완전히 통일되어 있어서 진짜 전체가 하나인 것처럼 들었어요. 곡들의 길이도 짧은 편이라 금방 다 듣기에도 수월 했고요. 예전 앨범들부터 일관된 색채를 보여주고 있는데 좋아하는 음악적인 방향이 확실하게 있기 때문일까요?
A. b!ni : 저도 그것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는데 계속 제가 좋아했던 음악들이 있어서 그 음악들과 비슷했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있어요. 그렇다 보니 비트, 멜로디, 믹스 등에 대해 고민이 많긴 해요. 음악적인 색채를 만드는 저의 보컬, 가사, 멜로디, 비트 등에 확실히 제가 원하는 색이 있어요.
Q. 가사를 잘 활용하는 느낌이 들어요. 특히 이번 앨범에서는 '서로의 장례식 축하해주는 사이'라니.😄 이전의 앨범들에서도 최근 들은 아티스트들 중에서 말 그대로 '한글'을 가장 잘 활용하는 느낌을 받았어요. 가사적으로 신경 쓰는 부분은 어떤 것들인가요?
A. b!ni : 음악을 하는 동료들이 많아지다 보니 그들을 보면 음악을 잘해서, 목소리가 예쁘고 악기를 잘해서, 아니면 컴퓨터를 잘해서 시작을 했더라고요. 저는 음악을 수다쟁이라서 시작했단 말이에요. 음악을 늦게 시작했는데 그래서 계속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할 말이 없으면 할 게 없거든요, 할 이유도 없고.
그래서 가사에 힘을 많이 주는 편인데 할 말이 많아도 주절주절 말하면 아무도 안 듣게 되니까 꼭 정리하고 말을 하려고 해요. 글을 쓸 때 일기를 많이 쓰고 그게 저의 정신 없는 것을 정리하는 방식이에요. 일기를 초등학교 때부터 썼는데 제 맘대로 쓰는 글에 익숙해요. 누군가에게 말하듯이 써요. 그렇게 글이랑 친해진 사이고 쓰다 보면 예쁘게 쓰고 싶어서 예쁜 문장, 단어를 찾다 보니 운율이 생기는 게 있더라고요. 글의 덩어리들이 길게 쓰고 가사로 바꾸고 싶은 욕심이 나면 스토리 대로 조각하듯이 시처럼 줄여요. 그 다음에 최대한 카톡 말투를 집어넣어요. 가사의 좋은 점은 사람이 말을 하는 말투를 담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카톡도 사람마다 말투가 있는 건데 음악은 시와 그 중간에 있는 느낌이에요. 그래서 제가 많이 영향을 받은 아티스트들은 한글을 너무 잘 쓰는 사람들인데 저도 그런 느낌을 넣으려고 노력하면서 깎아가며 쓰는 편이에요.
Q. 얘기가 나온 김에 이번 앨범명과 동명인 마지막 트랙 '멋진사이'는 어떤 곡인지 알려주세요.
A. b!ni : '멋진사이'는 친구, 부모, 아빠, 엄마, 이런 것들을 관계에 대한 이름과 호칭 이잖아요. 제가 앞서 말했던 사람에 대한 얘긴데 저를 힘들 때 구해줬다고 느낀 사람이 어떤 특별한 관계가 아니었거든요. 굳이 얘기하자면 동료이기도 하고 친구이기도 한 그런 사람인데 그 호칭들이 그 사람을 다 담지를 못하더라고요. 친구 이상이고 동료 이상인데 그렇다고 연인은 아니고 이런 느낌을 생각해보니 이 사람이 아니어도 종종 느끼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내가 감사함을 몰랐고 그 관계들이 가진 힘을 무시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그 관계들에 이름을 지어줬고 그게 '멋진사이'예요. 앞으로 그런 사이에게 '멋진사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자 싶어요. 이 앨범도 보이지 않는 빚을 지면서 많은 도움과 열정과 저를 믿어주는 믿음들이 모여서 만든 앨범이거든요.
특히 가사를 얘기하자면 '장례식'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는 게 '내가 음악을 왜 해야 하지?'라는 고민을 다들 할 텐데 저는 나중에 실버타운에 가서 할머니, 할아버지 모여 '내가 왕년에 음악 했잖아, 가사 잘 썼지?'하는 대화가 재미있을 것 같거든요. '멋진사이'라고 했던 사람들은 어떤 나이 차이든 어떤 직종이든 삶이 끝나가는 순간에도 재미있는 이야깃거리가 생길 것 같아요. 그게 제가 얻는 가장 큰 것이에요. 진심으로 서로의 장례식을 축하해줄 수 있는 사이라고 생각해요. 진짜 행복했으면 좋겠고 죽어도 잘 죽었으면 하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멋진사이'라고 정의 내린 사람을 생각했을 때 누군가 우울하다고 얘기했을 때 밝은 곳으로 끄집어 올려주는 느낌보다는 나도 내려가서 '나도 여기 있어'라는 얘기를 할 수 있는, 그걸 웃으면서 개그칠 수 있는 블랙코미디가 먹히는 사이인 것 같아요. 그런 사이에 대한 가사들을 넣었어요.
Q. 개인적으로는 이전에 나왔던 '나너..'를 가장 많이 들었어요. 댄서블하면서 가사적으로 재미있고 리듬감 있는 보컬이 정말 좋더라고요. 음악생활을 하는 동안 본인이 작업한 음악 중에 가장 아끼는 곡은 어떤 곡일까요?
A. b!ni : 모든 곡들을 아끼지만 [나너도기] 앨범이 제일 내고 싶던 곡들었어요. 첫 홀로서기여서 과정 중에 아쉬운 점이 있기는 하지만 곡들을 냈을 때의 기분을 잊을 수 없고 너무너무 내고 싶던 곡들이어서 이 2곡을 너무 아껴요. 다음에 나온 곡들도 다 아끼지만 정리해서 낸 게 [멋진사이] 앨범이에요. 그리고 저는 '꼬리고기'도 매우 아낍니다.
Q. 이전에 딩고의 라이징벌스 콘텐츠에 나가셨잖아요? 인상적인 경험이었을 것 같은데 당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A. b!ni : 인디펜던트가 되고 첫 스케줄이었어요. 딩고에서 라이징벌스 콘텐츠에 한 자리 비어 있다고 연락이 왔고 완전 친한 친구 한 명만 데리고 갔어요. 혼자 활동을 하려고 운전을 막 배우기 시작할 때여서 초보운전임에도 '운전, 되겠지 뭐~'하면서 갔어요. 그런데 다른 출연자 두 분이 같이 온 관계자들이 엄청 많은 거예요. 친구랑 초라하게 살짝 기죽는 느낌으로 있었는데 그래도 뿌듯한 것도 있었고 PD 님이 저를 응원해 주시는 게 느껴져서 열심히 했어요. 아쉬움도 있고 긴장도 뿌듯함도 게이지가 아주 풀로 찼던 기억이 나요. 너무 뿌듯해요. 앞으로의 인디펜던트 생활에서도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Q. 영향을 받은 아티스트는 누구일까요?
A. b!ni : 아이유 님 가사를 좋아해요. 제 10대에 아이유 님이 가사에 힘을 주기 시작할 때일 거예요. 음악이 유일한 출구인 갇혀있는 십대에 가사가 너무 충격적이었어요. 자이언티, 크러시, 딘 등이 한창 활동을 할 때여서 많이 들었어요. 고등학교 때 제일 힘들 때 그 음악들에 영향을 크게 받았어요. 입체적으로 다 멋있던 건 빈지노였어요. 다이나믹 듀오도 크게 영향을 받았어요.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은 건 아이유, 빈지노, 자이언티 이렇게 세 팀이에요.
내가 이 사람들의 음악을 듣고 얼마나 큰 위로를 받고 큰 전율을 느꼈는가를 기억하면 이 음악들에서 벗어나기보다 이 음악을 어떻게 만들었나 하는 연구로 이어지는 것 같아요. 이들의 공통점은 가사가 기깔나고 한국말을 잘 쓴다는 것에 영향을 받았어요. 자이언티, 빈지노의 트랙이 너무 좋았는데 두 분다 뒤에 Peejay 님이 계시잖아요. Peejay 님의 트랙에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아요.
Q. 향후의 계획은?
A. b!ni : 어떻게든 음악하고 살기. '이짜나'라는 곡이 토요일에 새 싱글로 나와 있을 겁니다.😄 [멋진사이]부터 시작해서 앨범커버나 참여진들이 제가 원하는 방향성으로 많이 이끌어낸 앨범이에요. 제목이 '이짜나'이로 래퍼 오르내림이 피처링을 해주셨어요. 프로듀싱을 L-like 언니가 참여해줬어요. 진짜 고마운 사람들이 많아요. 이 곡은 최대한 이전의 '수선'이나 L-like언니랑 전에 작업한 '살금'같은 곡을 좋아하는 분들은 위한 이지한 곡입니다. 이번 앨범 계획은 릴스를 질리도록 올리는 게 계획입니다.😄 이렇게 인터뷰 한 것도 있고. 작고 크게 만드는 라이브 콘텐츠도 있을 예정입니다.
May 01, 2024
Editor Dike(오상훈) instagr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