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edy, "피엘레스(피부)"

불행을 아름답게 빚어놓은, 그 어떤 영화와도 다른.



‘실험적이다.’ 


영화를 보고 난 후 들었던 감상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이렇다. 기형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화사한 파스텔 물감으로 그려진다. 속옷, 쓰레기 봉투 색까지 연분홍으로 통일한 모습은 ‘강박적으로’ 예쁜 색감을 구현하는 듯하다. 여러모로 시각적 허영심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화사한 색감과 달리 영화 속 인물들의 삶은 마냥 아름답지 못하다. 입과 항문의 위치가 뒤바뀐 사만타, 눈이 없는 라우라, 연골무형성으로 인해 키가 작은 바네사, 신체통합 정체성장애로 인해 다리를 없애고 싶어하는 크리스티안 등. 그들이 가진 기형과 장애로 인해 차별받으며 살아간다.


77분에 걸쳐 나열되는 이야기들을, 몇 가지 언어로 정리해보았다. 살아 움직이는 이미지를 언어로 잘 구현해낼 수 있길 바라며.


[1. 우리는 결국 타인에게 ‘타자’이다]

웨이트리스로 일하는 ‘뚱뚱한 여자’는 사만타를 보자마자 비웃는다. 사만타는 입이 엉덩이에 있어 스프만 먹을 수 있다. 그것도 호스를 통해서 간신히. 그런 사만타의 모습은 비웃음의 대상이 된다.


그를 비웃었던 여자 역시 타인에게는 기피의 존재가 된다. 사회에서 규정하는 미의 조건에 전혀 들어맞지 않으니까. 자신도 누군가에겐 차별받는 존재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자신보다 더 ‘기형인’ 존재 앞에서 우위를 점한다. 두려움은 해체되고 그 자리에 비웃음이 들어찬다.

사만타의 아버지도 사만타의 존재를 온전히 인정해주지 못한다. “밖에 나갈 때 맨 얼굴로 나갔어?”라고 다그치며, 생일 선물로 ‘유니콘 가면’을 선물한다. 기이하기 짝이 없는 유니콘 가면을 ‘선물’하며 예쁘다고 감탄하는 아버지를 보며, 인간은 결국 타인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생각을 했다. 가족마저도 결국 ‘타자’로 인식된다. 나와는 전혀 다른, 그런 존재.


[2. 퉁명스러운 주제의식 : 메시지를 분명하게 전달하지 않는다]

<피엘레스>는 기형을 다룬 ‘보편적인’ 영화들과 뚜렷이 구분된다. 보통 기형을 가진 인물들을 그려낸 영화는, 휴머니즘적인 따뜻한 시선으로 인물을 바라보기 마련이다. 하지만 <피엘레스>에선 따스한 시선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때론 메마르고, 때론 우악스럽다. 초반부 등장한 “세상은 끔찍한 곳이지. 인간도 끔찍하고. 하지만 벗어날 수 없어. 그게 우리니까.” 라는 대사는 감독의 말을 대신 전하는 듯하다.


감독은 각 인물의 사연을 병렬적으로 나열한다. 일관된 메시지를 강조하는 것보다, 인물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데 집중한다. 77분이라는 길지 않은 러닝타임도 <피엘레스>의 주제의식을 희석했을 테다. “아무리 그래도 세상은 살 만하다.” “너 자신을 사랑해라” 와 같은 흔하고 낡은, 메시지를 강요하지 않는다. ‘말하기’보다 ‘보여주기’에 집중하며, 관객들을 점층적으로 충격에 빠뜨린다. 인물들의 삶을 보여주는 수단으로 미장셴에 집중했다.


하지만 그래서 마음에 들었다. 인물들을 매개로 어설픈 메시지를 전달하려 하지 않아서 좋았다. 우리가 살아가는 복잡한 세상을,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자존감’만으로 살아낼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 오히려 오만일 테니까.


[3. “나는 너의 기형이 좋아.” : 다른 의미의 외모지상주의]

얼굴 반쪽이 무너져내린 아나에겐 두 명의 남자친구가 있다. 그 중 에르네스토는 아나에게 “나는 기형인 여자를 좋아해서 여태껏 연애를 못했던 거야.”라고 말한다. “엄마는 내가 자기처럼 비정상적인 여자를 좋아한다는 걸 알고 날 내쫓았어.”라는 막말도 서슴지 않는다.


그런 에르네스토에게 아나는 말한다.

“나는 기형인 것만이 전부가 아니야. 외모는 껍데기일 뿐이야. 바뀔 수도 있어. 외적으로 보이는 건 아무것도 아니야.”


아나의 기형적 얼굴은 에르네스토에게 매력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에르네스토가 아나를 정말 사랑했다고 할 수 있을까? 그가 아나를 정말 진심으로 사랑했다면 면전에 대고 ‘비정상적이다’는 말은 감히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아나의 정체성을 ‘기형’하나만으로 규정했고, 이는 아나에게 상처가 되기에 충분했다.


에르네스토의 관념 또한, 다른 의미의 외모지상주의가 아닐까.


<피엘레스>가 ‘인생영화’인 건 아니다. 사실 누군가의 인생영화가 되기엔 다소 불편한 영화다. 하지만 일생동안 잊히지 않을, 강렬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에두아르도 카사노바 감독은 문제의식을 제시하나 섣불리 답을 내리지 않았다. 그저 인물들을 비춤으로써 영화를 완성시켰다. 그런 시도를 높이 사고 싶다. <피엘레스>는 여러모로 ‘문제적 작품’으로 남게 될 것이다. 


그 어떤 영화와도 다른, 새로운 작품을 보고 싶은 이에게 이 영화를 추천한다.


September 1, 2020

Editor 이다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