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ma, "굿타임"

뱀파이어 왕자는 없다. ‘망가진’ 로버트의 하룻밤


로버트 패틴슨하면 창백한 낯빛의 뱀파이어를 떠올릴 때가 있었다. 하얗게 질린 얼굴, 나지막한 목소리, 중세 시대 사람(이었)다는 컨셉에 맞는 ‘에드워드’라는 이름까지. <굿타임>을 보기 전엔 그랬다.

웬걸. <굿타임>의 로버트는 일탈에 몸을 맡기는 코니로 다시 태어났다. 지적장애가 있는 동생과 함께 은행을 털었으나, 동생이 붙잡혀 감옥에 들어갔다. 필연적으로 이 영화는 그런 동생을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다. 동생의 약함은 코니의 역할을 더욱 부각시킨다.


[서사 없는 범행- 오로지 도망치고 도망칠 뿐]


그 범행에는 서사가 없다. 보통 범죄영화에선 범행동기, 준비과정 등이 비중있게 다뤄진다. <사냥의 시간>이 그랬다. 주인공이 왜 도박장을 털기로 결심했는지, 어떻게 범행을 준비했는지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하지만 <굿타임>은 다르다. 정신차려보니 코니와 닉이 은행원을 협박하고 있었다. 은행을 턴 기쁨을 누리기도 전, 동생이 잡힌다. 


그렇게 절약된 러닝타임은 ‘한밤 중의 비행’을 다루는 데 쓰인다. 한 여름밤의 꿈처럼, 짧지만 강렬하다.

코니의 도피.은신을 위해선 주로 여성들이 이용된다. 연상의 애인 코리부터, 미성년자인 크리스탈까지. 코니는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자신의 매력을 파는 걸 주저하지 않는다. 그는 각 여성들을 ‘조종’해 위기에서 탈출한다. 놀라울 정도의 가스라이팅도 수반된다. 16살인 크리스탈에게 키스하는 장면은 그야말로 가관이다. 자신이 현상수배된 뉴스를 못 보게 하기 위해서였다. 


<굿타임>의 절정은 병원에서 동생으로 추정되는 남자를 데리고 탈출하는 장면이다. 세간에선 ‘잘생긴 애 옆에 잘생긴 애’라는데, 그의 행보는 거짓말 옆에 거짓말이다. ‘동생’을 가까스로 빼낸 후 차량에 먼저 올라타기 위해 “God bless you”를 연발한다.


[부족한 예산을 분위기로 채운 영화]


<굿타임>은 저예산 영화다. 영화를 만드는 데 든 비용은 2백만 달러(한화 약 23억 7900만 원)에 불과하다. 블록버스터 영화에 흔히 동원되는 시각적인 화려함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 공백을 채우는 건 ‘긴장감’이다. 붉은 색감과 음악이 긴장감을 조성한다. 관객은 거듭되는 거짓말을 목도하며 코니가 언제 잡힐지 질문하게 된다. 


이토록 놀라운 가성비라니. 가히 저예산 영화의 모범으로 꼽을 만하다. 


[누구를 위한 ‘굿타임’인가]

영화는 수미상관에 충실하다. 시작과 끝 모두 정신과 의사 피터 버비가 동생 닉을 상담한다. 도입부에선 코니가 화를 내며 닉을 데려갔지만, 반면 후반부엔 코니가 없다. 의사는 말한다. “코니도 자기와 맞는 곳에 있어.”(He’s right where he belongs) 감옥에 있단 소리다.

닉은 특수교육 반에 들어간다. 그 곳에서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과 친절한 선생님을 만난다. 그들은 닉에게 인사한다. “Hi Nick!” 


선생님을 놀이를 제시한다. 물음에 YES라고 답하는 대신 방을 가로지르는 식이다. 

“때로 가족과 사이가 안 좋았던 적 있나요?”

“하지도 않은 일로 욕먹은 적이 있나요?”

“외로웠던 적이 있나요?”


닉은 말없이 방을 가로지른다. 톡 치면 눈물을 쏟아낼 것 같은 얼굴이다.


엔딩의 분위기는 앞선 장면들과 전혀 다르다. 일탈과 도주가 아닌 ‘정착’에 초점을 맞춘다. 이 영화에서 처음으로 휴머니즘을 느낄 수 있는 지점이다. 긴장으로 꽁꽁 뭉쳐 있던 관객의 마음을 풀어내며 묻는다. “닉에게 정말 필요한 건 무엇이었을까?”


영화 초반의 코니는 닉에게 “네가 겨우 저 정도라 생각해?”라고 고함쳤다. ‘너는 내 동생이고, 너에겐 나밖에 없다. 너는 다른 지적장애인들과는 다르다’는 사인이었으리라. 하지만 코니가 틀린 듯하다. 닉에게 필요했던 건 거액의 돈이 아니라, 자신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교류할 사람이었던 것 같다. 


외로운 적 있었냐는 질문에 방을 건너는, 닉의 발걸음이 말하지 않는가. 난 외로웠다고. 

<굿타임>은 대사의 절반을 ‘Fuck’이 차지하는, 참 날것의 영화다. 저예산영화라는 특성은 오히려 날것에서 기인하는 긴장감을 강화한다. 끝까지 달리다 하수구에 처박힌 남자의 이야기를 본 기분이다. 행복을 좇는 코니의 방법이 틀렸다는 둥 도덕적인 얘기는 하고 싶지 않다. 현실세계 어딘가 존재하고 있을 코니와 닉이 ‘굿타임’을 보내길 바랄 뿐이다.

*해당 영화는 넷플릭스, 네이버 영화 등에서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September 14, 2020

Editor 이다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