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ma, "로마"

감정선을 따라가니 어느새 하나가 된 가족 


<로마>는 제75회 베니스 영화제에서 만장일치로 황금사자상을 수상했으며 평론가와 관객의 높은 평점을 차지한 영화다. 이 영화는 스토리 있는 ASMR 같다. 거리에서 들리는 작은 소음부터, 새, 강아지까지 일상의 소리가 영화에 잘 담겨 있기 때문이다. 잔잔한 사운드 덕에 공간의 편안함과 안락함을 느낄 수 있었다. <로마>는 중산층 가정부로 일하는 클레오 시선으로 그녀의 일과 일상을 훑는다. 숨 가쁘게 위기와 사건을 보여주는 다른 영화와 달리 천천히 이야기를 펼쳐낸다. 흑백 영화로 인간의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한 덕에 쉽게 인물에게 집중할 수 있었다.  


이야기 중심은 클레오에게 있지만, 그녀의 이야기에 힘이 될 수 있도록 소피아가 등장한다. 소피아는 클레오가 일하는 주인집 아주머니이다. 남편이 바람피워 어머니와 아이를 홀로 키우고 있다. 클레오는 만난 지 몇 개월 되지 않는 남자를 만나면서 원치 않는 임신을 했다. 이 사실을 남자에게 말하자 바로 클레오를 버렸으며 나중에 찾아갔을 때 못된 말을 퍼붓기도 했다. 이 두 사람은 남자에게 배신을 당하여 비슷한 상처를 갖고 있다. 서로의 아픔을 이해하고, 어루만지면서 성장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마당엔 개똥이 사방에 널려있다. 영화 도입부에도 마당을 물과 비누로 닦아내는 장면을 보여준다. 아무리 열심히 닦아도 마당엔 늘 똥이 있다. 좁은 마당에 큰 자동차를 완벽하게 주차하려는 남편은 벽에 부딪히지 않고 똥을 밟지 않으려 한다. 어쩔 수 없이 똥을 밟지만. 남편은 마당을 잘 정리하지 않는 클레오를 탐탁지 않아 한다. 반면 아이들과 아주머니는 클레오를 좋아한다. 오랜 시간 함께 했기에 정이 있고, 아주머니의 성향을 이미 다 파악하고 있어서 일도 익숙하게 하기 때문이다. 또한 마당이 더러워도 아이들은 잘 놀며, 아주머니 역시 뭐라 하지 않는다. 남편이랑 싸웠을 때 치우라며 화냈을 때 빼고. 이 장면뿐만 아니라 <로마>를 살펴보면 주로 남성은 폭력과 무심함을 보이고, 여성은 함께 포용하려는 모습을 종종 발견한다. 1970년대 학생 운동하던 멕시코 시대적 배경과 그 속에서 힘든 삶을 살던 여성의 삶을 보여주려 함을 알 수 있다. (마당이 많이 나오곤 했는데, 위에서 언급한 내용 외에도 다양한 메시지를 담고 있을 것 같다.) 

클레오가 만삭일 때 침대를 구매하기 위해 가구점을 찾았다. 그때 학생 운동 하는 청년이 총살당하는 걸 봤고, 양수가 터졌다. 거리에 차가 밀려 겨우 병원에 도착했지만, 아이는 숨 쉬지 않은 채 태어났다. 원하지 않던 아이지만, 인사도 나누지 못한 채 헤어졌다. 클레오의 상실감을 위로하기 위해 소피아와 아이들은 함께 바닷가로 간다. 수영하지 못해서 멀리서 지켜보던 클레오는 바닷가에서 노는 아이들이 위험하다는 걸 발견하고 파도에 휩쓸릴 뻔한 아이들을 구한다.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다시 태어났다. 아이들을 구해줘서 고맙다는 소피아의 말에 클레오는 말했다. "저는 아이를 원하지 않았어요" 그런 클레오를 아이와 소피아가 꽉 안아준다. 

한 지붕 아래 살지만, 현실은 가정부와 집주인이다. 가족이라 말하지만, 할머니는 클레오 이름을 알지 못했으며 개그 프로그램 볼 때도 클레오는 청소하고, 집주인과 아이들은 TV를 봤다. 이처럼 알게 모르게 거리감이 느껴졌는데, 마지막 장면은 하나가 된 듯했다. 특히 물을 무서워하는 클레오가 거친 파도에도 망설임 없이 다가가는 모습에서 더 가족 같았다. 서로의 상처를 이해하고, 천천히 가족이 되는 과정을 깊이 있게 표현한 듯싶다. 


<로마>를 보다 보면 왜 이렇게 노동 장면을 길게 보여주는가 의아할 때도 있었고, 같은 장면이 반복되면서 지루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음악 대신 주변 소음을 넣고, 컬러 대신 흑백을 선택하면서 점점 그녀의 삶에 빠져들었다. 클레오와 소피아는 겉으로 보기에 행복하고 평온해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상처와 위기를 반복하고 있다. 그때마다 위태로움을 느꼈지만, 함께 포용하며 잘 살아왔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그녀의 삶을 무겁게 할 고난과 역경이 찾아올지도 모른다. 다행히 그럴 때마다 마지막 장면처럼 꿋꿋하고 당차게 헤쳐나갈 것 같다. 



*본 영화는 넷플릭스에서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별 ★★★★☆


September 17, 2020

Editor 송다혜_매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