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ma, "거짓말"

진실이 환영받지 못하는 세상에서



영화 <거짓말>엔 나와는 비교도 안되는 거짓말을 하는 주인공, 아영이 등장한다. 비싼 전자제품을 구매하는 시늉만 내고 환불한다. 60평대 아파트를 살 것처럼 행세하고 보러 다닌다. 그렇게 빈곤한 자아를 채워간다. 그런데 그 모습이 밉기보단 안쓰러웠다. 아영의 거짓말이 들키기 바라지 않았다. 왠지 자꾸만 응원하게 됐다.

(이하 리뷰는 스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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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과 이상, 두 개의 자아로 각 세계를 살아내다]



아영은 시궁창같은 현실에서 탈출하기 위해 거짓말을 일삼는 인물이다. ‘피부과에서 여드름 짜는 일하는 아영’과 ‘외제차 쇼핑다니는 아영’ 이라는 두 개의 자아를 만들어냈다. 현실과 이상의 차이를 좁히기 보단, 각각의 세계를 살아내는 것을 택한 것이다.



아영은 남자친구 태호에게 프러포즈를 받는다. 태호의 회사 숙소에서 설거지를 하다말고. 할 말이 있다는 태호의 목소리에 아영의 표정이 굳어진다. 태호가 할 말을 예상하고, 그 말을 직면하는 걸 두려워하는 듯했다.



프러포즈를 받은 후 아영은 태호와 외제차 앞에서 사진을 찍는다. 아영의 표정이 전례없이 밝다. 동료들에게 보여줄 인증샷을 남겼기 때문일 테다. 아영이 태호를 어떤 식으로 ‘소비’하고 있는지 볼 수 있는 지점이다. 사랑해서 만나는 애인이 아닌, 필요를 채워줄 수 있는 도구같은 존재. 그 ‘도구’의 유효기간은, 좁아터진 사택을 목도한 순간 끝나버렸다.

“우리 밥 먹으러 갈래요?”

“우리...그냥 자러 갈래요?”

아영은 끝까지 태호를 이용한다. 이별을 통보하기 직전의 섹스. 아영이 태호를 사랑했다면 최소한 같이 식사하며 자신의 마음을 이야기했을 것이다. 이별 직전까지 아영은 태호를 인격적으로 대하지 않았다. 변변한 집 하나 없는, 외제차 딜러로 일하는, 태호의 형편을 부끄러워했다.



[진실이 환영받지 못하는 세상에서]



마침내 거짓말을 안하기로 결심한 아영은, 태호와 다시 만난다. 그런데 태호는 “가족은 뭐 하시니?”라고 묻는 어머니께 “아버지는 사업하시고 동생은 유학 갔다”고 답한다. 태호 어머니의 얼굴에 만족스럽다는 표정이 깃든다.

그런 태호를 아영이 제지한다.

“어머니, 태호씨가 한 말 다 거짓말이에요. 저희 아버지는 사업하다 실패해서 빚쟁이고, 어머니는 새 살림 차렸어요. 언니는 알코올중독자예요.”

“아, 그리고 저는 병원 간호사가 아니라 여드름 짜는 일해요.”



여기까지 말하자 태호 어머니는 기가 찬 표정으로 태호에게 나가자고 손짓한다.


아영은 진실을 얘기했지만, 세상은 그런 아영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태호 역시 아영의 처지를 ‘숨겨야 할 것’으로 인식했고, 거짓말로 꾸며냈다. 진실을 말하자 어머니께 사과드리라고 말한다. 아영이 한 말은 토씨하나 안 빼고 팩트였지만, 태호 어머니가 ‘원하는 진실’은 아니었다.

진실이 환영받지 못하는 세상에서 “정직하게 살아라. 거짓말 하지 말라”는 당위적 목소리는 그 힘을 잃는다. 거짓말하는 이를 비난하면서도, 막상 치부를 솔직하게 터놓은 이를 낮잡아보는 세상은 참 아이러니하다. 이런 세상을 살아내는 소시민들은 나의 치부를 드러내면 거부받을 걸 훤히 알기에, 거짓으로 나를 위장하려 한다.


초라한 솔직함이 거부되는 세상에서, 칸트의 의무론은 유명무실해진다.



[결국 우리 모두 거짓말을 한다]



<거짓말> 포스터 속 아영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넌 안하니, 거짓말?”

그 물음에 차마 고개를 끄덕일 수 없었다. 나 역시 크고작은 거짓말을 하며 살아간다. 제2의 자아를 만들어갈 때도 있다. 아영처럼 ‘거대한’ 거짓말만 안 할 뿐이다.

영화는 관객들 역시 거짓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말한다. 결국 우리도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은 연약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설령 그 사랑이 거짓의 성 위에 쌓아진 것일지라도.



해당 영화는 왓챠, 네이버 시리즈온에서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October 13, 2020

Editor 이다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