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내사랑"

내 인생 전부가 이미 액자에 있어요


<내사랑>이라는 로맨틱한 제목과 달리, 이 영화의 뼈대는 로맨스가 아니다. 존중받지 못하고 살던 모드의 삶이, 자신의 재능을 알아 봐주는 이를 만나 변화하는 이야기다. 에버렛과의 사랑은 모드의 삶을 더욱 풍성하게 칠하는 물감 같은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의 본래 제목이 <모드>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을 테다. 모드의 이야기니까.


[모드를모드의 시선을 발견한 산드라]


영화 속 산드라는 모드를 발견했다. 마치 예술가를 발굴해냈던 이탈리아의 메디치가문처럼, 모드를 화가로 키운 사람이다.

"이름이 뭐예요?"
"이 그림, 당신이 그린 거에요?"

산드라는 모드의 아픈 다리나 초라한 행색이 아닌, 그의 존재를 물었다. 모드의 이름을 물었고 모드가 그린 그림에 관심을 보였다.

모두가 모드를 '부족한 사람', '정상인과 다른 사람' '다리가 불편한 사람' 으로 여길 때, 모드의 자아를 알아봐주었다. 맑고 순수한 영혼, 계속해서 그림을 그리고자 하는 의지로 모드를 정의했다. 그렇게 산드라는 모드의 그림카드를 구매하는 고객이자 친구가 되었다.

산드라는 모드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궁금해했던, 거의 유일한 사람이다.

"Show me how you see the world. (당신이 보는 세상을 알고 싶어요)”

이름을 불렀을 때 비로소 꽃이 되었다는 김춘수의 시처럼모드의 재능은 산드라를 통해 피어날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내사랑>속 산드라의 비중이, 에버렛보다 더 크다고 생각한다.


[다소 투박한그러나 끈끈한 로맨스]


참으로 투박하다. 모드와 에버렛의 관계는 흔히 로맨스가 그리는 낭만적 그림과는 전혀 달랐다. 처음으로 정의된 둘의 관계도 연인이 아닌, 가정부-고용주였고, 에버렛은 모드를 퉁명스럽게 대했다. 결혼하게 된 계기도 절절한 사랑과는 거리가 멀었다. ‘어쩌다 결혼한’ 느낌이 적지 않게 들었다. 사랑이 아닌 정으로 사는 것 같은 모드와 에버렛의 관계는, 시간이 흐를수록 단단해진다. 모드에게 거친 말을 퍼붓던 에버렛이 모드의 가치를 깨닫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영화 후반부, 에버렛은 모드에게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나보다 훨씬 나은 사람이니까.”
“왜 당신을 부족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을까?”

 ‘살아내던’ 이들의 관계는 , 서로에게 기대어 살아가는 것으로 변해갔다. 갈수록 서로의 온기에 익숙해진다. 서로에게 온전히 스며들었다


[모드에게 그림이란인생이다]


모드에게 그림은 전부였을 것이다. 붓을 잡을 힘만 있으면 그림을 그렸다. 물감과 붓만 있으면 아무래도 좋단다.

그림을 그릴 때만큼은, 허무하게 보내 버린 자신의 딸도, 어머니의 집을 팔아버린 못된 오빠도, 불편한 다리와 그 다리를 향한 사람들의 시선도 모두 잊을 수 있었을 것이다. 온전히 자유했을 것이다.

그래서 모드는 말한다.
내 인생 전부가 이미 액자에 있어요
.”

참 아름다운 영화다. “내 인생 전부가 이미 액자 속에 있다”는 모드를 나도 모르게 사랑하게 되었다. 모드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영화였다. 이 먹먹한 이야기가 실화라는 점이, 다시금 <내사랑>의 문을 두드리고 싶게 만든다. 모드와 에버렛의 작은 집의 문을 두드리고 싶다.


세상을 호령하는 야망이 아닌, 가꿔갈 수 있는 작은 정원이 필요한 이들에게 이 영화를 권한다. . 당신도 모드를 사랑하게 되길..



August 18, 2020

Editor 이다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