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ma, "화양연화"

돌아갈 수 없기에 안타깝고 애달픈 그들의 화양연화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절, 화양연화(花樣年華). 

시기와 형태가 조금씩 다를 뿐, 모든 이의 인생에는 화양연화가 있다.  

다만, 당시에는 미처 모르고 지나쳤다가 문득 뒤를 돌아 봤을 때 남은 흐릿한 기억과 후회 때문에 아름답지만 그만큼 안타깝고 애달플 뿐이다.


1962년 홍콩. 초 모완(양조위 분) 부부와 수 리첸(장만옥 분) 부부는 우연히 같은 날 같은 건물로 이사를 오게 된다. 한 건물에 여러 가구가 세를 들어 살고 있기에 이사 날부터 자주 마주치는 초 모완과 수 리첸. 두 사람은 매일 흐트러짐 없는 모습으로 직장에 다니고 퇴근 후에는 가정을 챙기며 권태로운 일상을 최대한 성실하게 보내고 있다. 하지만 두 사람과 달리 초 모완의 아내는 회사일이 바쁘다는 이유로, 수 리첸의 남편은 해외 출장이 잦다는 이유로 집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실제로 초 모완과 수 리첸의 배우자들은 영화 시작부터 끝까지 뒷모습이나 목소리로만 등장한다)


처음에는 어색하게 서로의 이름을 묻고 오며가며 안부를 묻다가 무협소설이라는 공통의 관심사가 있음을 알게 되는 초 모완과 수 리첸. 감정과 본능에 이끌려 믿음을 져버린 자신의 배우자들과 달리, 두 사람은 조금씩 상대에게 스며들어가는 방식을 선택한다. 연인에게 일상이나 다름없는 손잡기나 비가 많이 오는 날 같은 우산을 쓰는 것은 조심스럽지만 위태로운 일상에서 서로가 안식처가 되어 주는 두 사람. 자신을 보러 올 줄 몰랐다는 초 모완에게 “우리 그들하고는 다르니까요”라는 수 리첸의 말처럼 담담하게 서로에 집중하고 동시에 잃어버렸던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두 사람의 만남을 조용히 지켜보다보면 어느 순간 두 사람의 관계가 사람들의 입방아에 쉽게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들과는 분명히 다른 결임을 알 수 있다.

사람들의 좋지 않은 시선과 커져가는 감정에 부담을 느낀 초 모완이 싱가포르로 떠나려 할 때, 두 사람은 초 모완의 제안으로 미리 ‘이별 연습’을 해본다. 이미 이전에도 상대의 배우자들이 어떻게 옳지 못한 사랑을 시작했는지 가정해보거나, 수 리첸이 남편에게 불륜사실을 추궁하는 장면을 여러 감정으로 연습을 해보았기에 이번 이별 연습 역시 가볍게 시작하는 두 사람. 하지만 초 모완이 수 리첸에게 냉정하게 이별을 고하는 연기를 시작하자 수 리첸은 무너져버리고, 처음으로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토해낸다. 애써 외면했지만 두 사람은 이미 서로가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잔잔하지만 뜨거웠던, 담백했지만 절실했던 ‘그때 그 시절’이 두 사람 모두의 인생에서 화양연화로 기억되기 위해 어떤 엔딩을 맞아야 할까?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 초 모완이 홍콩이 아닌 캄보디아라는 낯선 외국의 유적지에서 자신만의 비밀을 지키는 모습과 함께 나오는 내레이션이 영화의 여운을 더 진하게 만든다. 


“먼지 낀 창틀을 통하여 과거를 볼 수 있겠지만 모든 것이 희미하게만 보였다“

당신의 화양연화는 언제였는가?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와 사투를 벌이며 습관적으로 과거의 특정 시절을 곱씹어 보는 요즘. 초 모완과 수 리첸의 화양연화를 엿보며 잠시잠깐 우리의 화양연화에 대해 생각해 보면 좋겠다. 혹시 모른다, 초 모완과 수 리첸 만큼 우리의 화양연화도 생각보다 더 아름답고 애달플지.



August 27, 2020

Editor 방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