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의동, "슬로우레시피"

가정집 같은 원목인테리어의 따뜻함


초, 중, 고교시절까지만 해도 학교 수업이 끝난 후 자연스레 찾게 되는 곳은 바로 단짝 친구의 집이었다. 교실을 나와 운동장을 가로지르며 '하하 호호' 쉴 틈 없이 떠들었던 걸로도 모자라 방과 후엔 꼭 친구네 집에 들르는 것은, 그 당시 우리들의 소소한 행복이자 하나의 루틴이었다. 내 집같이 편안한 그녀의 방에 머물다 보면 자연스레 못다 한 얘기가 술술 흘렀고, 맛있는 떡볶이와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시험 성적이나 좋아하는 이성친구, 유행하는 드라마 등을 얘기하다 보면 창밖으로 능소화의 색을 닮은 저녁 놀이 붉게 물들고 있기도 했다.  

슬로우레시피는 종로 통의동에 있는 공간이다. 서울의 많고 많은 동네 중 종로와 북, 서촌 일대를 정말 좋아하는 나는,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이 골목을 유유히 걷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나 매번 거닐 때마다 슬로우레시피의 감성 넘치는 간판을 몇 번 봤어도 내 발걸음은 그 맞은편인 mk2 카페로 향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지인과의 약속이 있어 좋아하는 서촌을 찾았는데 이 날은 왠지 슬로우레시피의 외관을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그저 오늘은 이 공간에 머물면 기분이 좋을 것 같았다.

내부는 생각보다 넓었고 무엇보다 원목이 주는 따스함에 먹이를 찾는 사슴처럼 이곳저곳을 갸웃거렸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바로 앞에 카운터가 보이는데, 꽤나 넓은 많은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공간임에도 사장님들의 태도는 여유로웠다. 메뉴판을 잠시 들여다본 후 나는 라떼를, 친구는 자몽 주스를 주문했다. 디저트는 뭘 먹을까 고민하다 가장 무난한 바스크 치즈케이크를 선택했다. 케이크 종류 말고도 팬케이크 세트나 파스타 등 가벼운 브런치도 함께 즐길 수 있게끔 되어있다. 

카운터를 지나면 또 다른 아늑한 공간이 펼쳐진다. 밖에서 보는 것보다 내부가 참 예뻤고, 서촌의 다른 유명하고 감각적인 카페들보다 좌석도 많았다. 또 조명이 적당히 어두워 안으로 들어갈수록 누군가의 방에 머무는 듯했는데 실제로 책과 편지지 그리고 책갈피가 놓여있던 테이블은 가까운 지인의 방으로 들어선 느낌을 주었다. 

테이블에서 화장실로 나가는 통로는 또 다른 매력을 자아낸다. 마치 시골 할머니의 집에 놀러 온 기분으로, 곳곳에 놓인 식물들의 신선함과 햇살이 주는 밝은 기운은 마치 공기 좋은 시골집 앞마당에 들른 기분이다.

커피 맛은 무난했다. 특별히 산미가 강조된 것도 부드러움이 드러난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굳이 설명하자면 산미보단 부드러움에 가까운 맛이었다. 그것보다 생으로 착즙한 자몽 주스가 매력적이었다. 특유의 씁쓸함보단 달콤함이 강조되어 호불호 없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음료였고 치즈케이크는 굉장히 촉촉해 마치 푸딩을 떠먹는 듯한 기분이었다.

커피와 디저트보다도 공간이 주는 분위기에 우리는 끝없는 대화를 이어나갔다. 중간중간 책도 읽고 해야 할 일도 마무리했다. 카페가 주는 이미지는 참 다양하다. 커피와 디저트가 맛있어 금세 유명세를 타 돋보이는 곳도 많지만 그 공간이 주는 매력과 분위기, 조화로움과 개성으로 물든 카페는 어떤 이에겐 주말에 꼭 다시 찾고 싶은 리스트가 된다. 

카페 곳곳에는 일러스트 작가들과 협업해 전시도 진행하는 듯했다. 여러 소품과 사진이 돋보여 한층 더 친숙한 분위기를 자아내 친구와 도란도란 얘기하기에 좋고, 또 혼자만의 방에 머무르는 듯 자신의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무엇보다 슬로우레시피를 나서서 서촌 일대를 천천히 거닐면 우거진 가로수들의 우직함과 자연스러움을 느낄 수 있어 참 좋다. 그 자체만으로도 설레고 감성적인 서촌. 청명하고 아름다운 가을날, 정답고 포근한 기분에 묵직한 설렘을 듬뿍 느끼고 싶다면 찬찬히 자신만의 레시피대로 오늘날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에 푹 빠져보자.





슬로우레시피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10길 8

02-733-3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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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 24, 2020

Editor 정채영  instagr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