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동, "음레코드" 

우사단로 끝자락의 비밀 아지트



첫눈이 내린다. 깃털처럼 흩날리는 눈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눈송이가 자아내는 포근한 풍경과 다르게, 차디 찬 바람을 맞다 보니 문득 사람이 보고 싶었다. 정확히는 사람의 온기가 그리웠다.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는 얼굴과 이름을 하나하나 떠올려 본다. 다정하고 부드럽게 흘러간 시간이었다. 누군가와의 만남이 어려워진 요즘, 지나간 추억들을 돌아보는 일이 잦아졌다. 사람은 추억을 먹고 산다는 말, 누가 처음으로 말했는지는 몰라도 진리임이 분명하다.



내게는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라면 반드시 소개하는 공간이 있다. 보통 내가 한 장소를 또 가는 일은 매우 드물지만, 그곳만은 예외이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누군가를 데려갔었다. 사랑하는 친구, 후배, 남몰래 좋아하던 남자애, 애인 등. 무슨 이유로 그랬냐고 묻는다면, 그 공간에 갈 때마다 드는 평온한 마음을 나누고 싶어서 라는 답을 줄 수 있겠다. 그 평화로움(?)을 함께하고 싶어서 그들을 데려갔고, 결과적으로 항상 좋았다. 그렇게 그곳은 좋은 기억만 남아 있는 장소가 되었다. 



앞에서 언급한 그 장소는 바로 '음레코드'이다. 이태원 우사단로의 끝자락에서 카페 겸 바를 운영하는 ‘바이닐 컬처 레이블’이다. 음레코드에 가는 길은 어쩐지 수상하고 비밀스럽다. 이태원 소방서 언덕길을 오르고, 이슬람 사원을 지나서도 한참을 걸어야 한다. 날씨가 좋지 못한 날이면 마을버스(용산 01)를 타도 괜찮지만, 웬만하면 걷는 것을 추천한다. 우사단로의 좁은 길, 양쪽으로 자리한 커피집이나 책방, 바버샵, 타투 스튜디오, 예술가의 작업실 등 주변을 둘러보는 재미가 쏠쏠하기 때문이다. 함께 간 사람들의 반응은 늘 똑같았다. '여기에 뭐가 있다는 거야? 대체 이 길이 맞는 거야? 차라리 택시를 타지..' 그들의 원망 어린 질문을 들으면서 목적지에 다다르곤 했다. 



음레코드는 3층형의 건물로 맨 위는 루프탑이다. 독창적인 인테리어와 미감이 돋보이는 1, 2층과 탁 트인 서울의 전망을 볼 수 있는 루프탑으로 구성되어 있다. 뮤직/LP바 답게 음반, 포스터, 스피커, 카세트 등의 오브제가 가득하다. 초창기에는 턴테이블에 내가 원하는 lp를 무제한(!) 들어볼 수 있었으나, 손상 사고가 잦아 언젠가부터 중단되었다. 아쉬운 마음을 달래주는 것은 공간을 가득 메우는 음악과 원색의 네온사인 조명 아래 빛나고 있는 각종 앨범들을 구경하는 일이다.



공간이 방처럼 분리되어 있고, 의자와 테이블은 일관성 없이 제각각으로 놓여 있는 터라 취향껏 고르면 된다. 어떤 자리는 깊고 큼지막한 소파로 되어 있어 거의 누워 있다시피 있을 수 있고, 또 어떤 자리는 철제 의자라서 오래 앉아 있기엔 적합하지 않기도 하다. 오묘하고 어딘가 힙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실내도 좋지만, 역시 나의 최애석은 루프탑에 있는 캠핑 의자. 내부와 다르게 적막함이 감도는 바깥은, 문을 열고 나오는 순간 탄성을 지르게 된다. 남산 타워를 둘러싼 서울의 시내를 조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답답한 일상에서 숨통을 틔워 주는 시원한 뷰를 마주하고, 포트 와인을 한 잔 마실 때의 기분이란. 



음레코드는 커피와 밀크티, 각종 칵테일, 맥주, 식사용 샌드위치, 감자튀김 등을 취급하는데 유일하게 아쉬운 부분은 가격이다. 가장 저렴한 음료인 에스프레소가 6천 원 정도이니, 그 밖의 메뉴는 8~9천 원을 웃돈다. 혹여 이 글을 보고 찾아간 독자님이 메뉴판을 보고 배신감을 느끼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남긴다. 열에 아홉 번은 이곳에서 주류를 마셨지만, 마지막으로 갔을 땐 코코넛 밀크 커피를 마셨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그때 당시의 아주 달고 진한 코코넛 향이 밀려오는 듯하다.



생각해보니 지난 몇 년 간 음레코드에서 사계절을 보냈는데, 올해는 봄 이후로 가보지 못했다. 갈 때마다 자리 배치가 미묘하게 변하곤 하는데. 이번 겨울의 음레코드는 어떤 모습일까. 인스타그램을 통해 소식을 확인할 뿐이다. 최근에 레트로 콘셉트의 티셔츠 프린팅 전시를 진행하는 듯하고, 여전히 아티스트들의 화보 촬영 장소로 기능하고 있다. 활동과 만남을 자제해야 하는 시기라 당분간은 가닿을 수 없겠지만, 내년 초 즈음엔 꼭 누군가와 함께 가고 싶다. 보다 희망찬 내년을 기대하며. 애정하는 사람들과 비밀스러운 아지트를 공유하고 싶다면.





음레코드

서울 용산구 우사단로10길 145 

070-4001-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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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ember 22, 2020

Editor 길보경  instagr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