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당동, “위캔드히피”

드립커피와 시, 대화를 사랑하는 이들이라면


‘이따금씩 히피 흉내를 내는 사람들’이라는 뜻을 가진 위캔드히피는 일상을 살아내는 이들에게 잠시나마 유럽 감성을 주고 싶은 마음에서 탄생했다. 현재의 고민과 걱정거리는 잠시 내려두고 마치 히피처럼 주어진 시간을 자유롭고 편안하게 보냈으면 하는 바람이다. 

패션업계에 종사하며 틈틈이 커피를 배웠던 대표는 마침내 자신만의 공간을 갖게 됐다. 독서와 필사, 글쓰기를 좋아하는 그답게 자리 곳곳마다 시집이 놓여 있고 벽 군데군데 그의 자필이 적혀 있다.


선우정아의 목소리와 컨트리 팝이 섞여 흐르던 공간. 위캔드히피는 소음을 지양한다. 에스프레소 머신은 물론 제빙기도 없다. 필터지에 담긴 수북한 원두를 자신만의 결대로 한 잔 한 잔 정성스레 제공하는 일이 전부. 커피 메뉴는 단출하다. 카페에 방문하면 주로 라떼류를 마시는 나로선 간략한 메뉴에 약간 당황했다. 오전 업무시간에 블랙커피를 하도 많이 마셨던 터라 하는 수없이 차가운 토피넛라떼를 주문했다. 디저트는 대표가 직접 만든다. 에그타르트와 브라우니가 있지만 가장 인기 있는 것은 바나나 브륄레. 그러나 내가 방문했던 날을 끝으로 당분간 판매를 중단하신다고.


손님들께서 많이 찾는 음료 메뉴를 여쭈니 단연 브루잉 커피라고 한다. 그중에서도 산미가 적고 가장 대중적인 인도네시아 만델링이 반응이 좋다. 논커피 메뉴로는 뱅쇼도 인기다. 비교적 선선한 저녁시간대라 그런지 가게 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그 틈으로 오토바이와 자전거가 지나다니는 소리, 삼삼오오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 슬리퍼를 끌며 가는 이 동네 주민의 가벼운 표정 등을 마주할 수 있었다. 

잠시 앉아 있으니 토피넛라떼와 바나나브륄레가 나왔다. 기다란 아이스 잔이 아닌 손잡이가 달린 잔이다. 아차 싶어서 '이거 차가운 거 맞죠?'라고 물으니 그렇다고 하신다. 코에 얼음이 닿는 것이 불편해 브루잉 커피를 제외한 모든 아이스 음료에는 얼음을 제공하지 않는다고. 에이드류도 마찬가지다. 다만, 테이크아웃 잔 이용 시엔 얼음이 들어간다.


우유가 들어간 커피를 찾는 손님이 분명 있을 거라 예상해 여쭈었다. 메뉴판에는 적혀있지 않지만 손님이 원할 시 만들어준다고 한다. 에스프레소 머신이 없어 우리에게 익숙한 쫀쫀한 라떼 맛과는 거리가 멀다며 걱정하시지만, 왠지 맛이 좋을 것 같다. 드립으로 내린 라떼, 흔히 카페오레라고 알려진 음료는 우유와 물이 섞이기 때문에 일반 라떼에 비해 다소 싱겁다고 느낄 수 있다. 대표는 이에 원두량을 30g으로 늘리고 물의 양은 100ml로 줄여 최대한 진하게 우러나올 수 있도록 신경 쓰고 있다고. 다음번에 방문하면, 카페오레를 마셔보고 싶다.


직장인과 자취생이 오다니는 동네 특성상, 단골손님도 많다. 남 사장님에게서 보기 힘든 섬세한 감각과 수납장을 가득 채운 형형색색의 고운 커피잔, 싱그러운 식물과 감각적인 엽서들 때문이 아닐까 싶다. 화룡점정으로 친절함과 자상함까지 겸비한 대표의 마음 씀씀이도 포함돼 있을 터. 따스한 봄기운이 묻어나는 공간인지 주로 볕이 잘 드는 아침이나 정오의 시간대에 방문하는 이들이 많다고. 그도 그럴 것이 위캔드히피를 방문한 이들의 SNS엔 감성적이고 따스한 느낌이 만연하다.


“지옥만큼 어둡고 죽을 만큼 강하고 사랑만큼 달콤하다.” 

한 번쯤 들어봤을법한, 커피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터키 속담이다.

사장님과 이야기를 주고받고 인사를 나누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왠지 모르게 저 속담이 계속 아른거렸다. 감성적이고 모던한 인테리어가 매력적인 핫플이자 그간 수없이 만졌던 문장을 조심스레 공유하고 싶어지는 그런 공간.

부디 이곳에서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자유로운 마음으로 각자의 소중한 시간을 이리저리 만져보길 바란다. 




위캔드히피

서울 동작구 동작대로9길 52

0507-1354-27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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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e 24, 2021

Editor 정채영  instagr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