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희동, “카페 스페이스독”

우주적 상상력을 더한 사색의 공간



서울에는 이름 자체로 상징적 의미를 지닌 동네들이 계속해서 늘고 있다. 연남동, 을지로, 성수동, 이태원, 서촌 등. 소위 ‘뜨는 동네’의 탄생과 발전 그리고 번영 혹은 쇠락이 반복된다. 그렇게 도시는 성장한다. 여느 메트로폴리탄과 비교해도 뒤처지지 않는 서울로 거듭날 수 있는 힘은, 이러한 동네들의 약진으로부터 비롯되는 게 아닐까? 문화의 중심이자 라이프스타일의 기준으로 자리한 여러 동네들이 모여 서울을 이루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내가 8년째 거주하고 있는 연희동도 나름 '뜨는 동네'의 축에 속한다. 서울을 팔레트에 비유한다면 아마도 주황색 내지는 노란색에 가까운 따듯하고 소담한 동네이다. 5층 이상의 건물이 거의 없고, 단독주택이 많아 '마을'다운 풍경을 지녔다. 아파트가 더러 있기는 하지만, 연희동을 대표하는 골목길을 걸어 본다면 저마다 개성이 담긴 마당과 나무를 지닌 주택가를 마주할 것이다. 각기 다른 집의 모양과 사이사이 들어선 상점을 구경하는 일은 언제나 즐겁다. 역세권이 아니어도, 많은 사람들이 꾸준히 찾아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지난 1월, 연희동의 매력을 한층 더 빛내줄 공간이 생겼다는 소식을 접했다. 바로 5층 규모의 건물, '스페이스독'이다. 이곳은 연희동 최초의 예술영화관과 더불어 카페와 루프탑을 보유한 복합문화공간이다. 스페이스독은 단어 그대로 SPACE(우주, 공간)와 DOG/DOCK(개/ 우주선의 결합)이라는 의미가 더해져 탄생했다.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생명체 개와 같이 편안한 공간이 되고 싶은 마음과 도심 속 우주를 구현한 공간에서 사람과 사람, 영감의 원천들이 연결되어 시너지를 창출하길 바라는 마음이 담겼다.



지하 1층에는 ‘라이카시네마’가 있고, 1/2층은 카페 스페이스독이, 3/4층은 스페이스독 스튜디오가 있었다. 마지막으로 5층에는 루프탑 테라스가 자리했다. 영화와 커피 그리고 휴식이 한데 가능한 공간이라니.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자 일상을 풍요롭게 하는 필수 요소들이 스페이스독이라는 이름 아래 구현되어 있었다.



겨울의 끝무렵, 어느 맑은 날 아빠와 함께 카페 스페이스독을 찾았다. 한눈에 봐도 크고 깨끗한 건물이 예사롭지 않게 느껴졌다. 옅은 회색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독특한 공간감에 매료되고 말았다. 거친 질감의 콘크리트 벽과 대리석, 쇠 테이블로 인한 차갑고 독특한 느낌과 돌, 나무, 물 등의 자연적 오브제가 전달하는 생동감이 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이 공간에 우주적 상상력이 더해졌기 때문일까? 마치 거대한 우주선 혹은 낯선 행성에 도착한 기분이 들었다. 그중에서도 압권은 2층에서 들려온 물소리. 1층에서 음료를 주문하고 계단을 오르자, 물이 배수로에서 끊임없이 흐르고 있는 것을 목도할 수 있었다. 소리가 어찌나 청량한지 가만히 듣고 있으면 머리가 맑아지는 듯했다. 



카페 스페이스독의 메뉴는 다채로운 취향을 만족시킬 만큼 폭이 넓다. 커피 애호가라면 반가워할 에스프레소, 콘파냐, 플랫화이트부터 싱글오리진 콜드브루와 더치라떼, 아인슈페너 등의 커피 메뉴가 있다. 원두는 모두 듁스 커피 블렌드이다. 이밖에 시그니처인 딸기/ 초코라떼, 흑임자라떼, 밀크티, 페퍼민트 티 등의 메뉴도 있다. 주력하는 디저트는 와플인데, 무난한 생크림/ 애플크림/ 생딸기 부터 인절미, 누텔라, 오레오 같은 매니악한 종류도 마련되어 있다.



나의 선택은 에스프레소와 흑임자라떼 그리고 바리스타님이 추천하신 생딸기 와플이었다. 아빠는 아메리카노와 에스프레소 콘파냐를 함께 주문했다. 커피는 듁스 원두로 내렸기에 어느 정도 예상을 했지만, 산미가 강하게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크림이 올라간 콘파냐와 부드럽게 조화를 이뤘다. 개인적으로 산미가 있는 커피는 라떼와 어우러졌을 때 더욱 맛있게 다가온다.



흑임자라떼는 순전히 호기심 때문에 시켜 보았는데, 이날 마신 커피보다 내 취향에 가까웠다. 두유처럼 우유 자체에 흑임자를 넣는 것이 아닌, 흰 우유에 흑임자 시럽을 더한 생크림을 얹은 형태였다. 풍부한 흑임자 크림이 먼저 입안에 퍼지고 나서 연이어 우유가 뒤섞이자 혀끝에 감도는 고소하고 진한 맛이 일품이었다. 생딸기 와플은 ‘아는 그 맛’이었다. 와플의 겉면은 학교 앞에서 자주 사 먹던 와플처럼 얇고 바삭했고, 안쪽에 잔뜩 발린 잼과 생크림, 딸기의 조합은 계속 당기는 맛이었다. ‘뭐야, 이건 맛없을 수 없는 조합이잖아’라고 생각하며 순식간에 클리어했다.



마지막으로 루프탑에 올라가 보았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린 순간, 탁 트인 전망이 펼쳐졌다. 사실 실내공간에 머무는 동안 사람이 우리 밖에 없어서, 더욱 고요하고 편안하게 즐길 수 있었다. 루프탑에도 마찬가지로 그 누구도 마주하지 않은 채 온전히 그 시간을 누릴 수 있었다. 저 멀리 보이는 산등성이와 하늘을 떠도는 구름을 바라보니 심신에 평온이 찾아왔다. 아빠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는지, 풍경을 가만히 바라보고 계실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사색에 잠겨 한참을 보냈다. 우리에게 필요한 무언가를 찾고 싶은 모두에게 권하는 곳.






카페 스페이스독

  • 서울 서대문구 연희로8길 18

010-5737-5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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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ruary 10, 2021

Editor 길보경  instagr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