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플랜트”

여행의 기분을 선사하는, 모두를 위한 비건 카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지구인은 위태롭다. 미세먼지의 습격, 팬데믹의 장기화, 이상기후로 인한 재난까지. 열거하고자 하면 끝도 없는 재앙적 위기가 우리의 일상이 되었다. 불안한 나날에 찬란한 봄꽃이 위로를 해줄 수 있을까. 몽매한 인간의 기대였다. 봄꽃의 상징인 벚꽃이 때 아닌 3월에 만개하고 말았다. 이 또한 온난화의 결과다. 관측 이래 100년 만에 17일이나 일찍 개화했다고 한다. 그저 기뻐하며 보낼 수 없는 시절이다.



앞서 언급한 전 지구적 재난은 '기후위기'로 수렴한다. 더 이상 자연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지구를 헤아려 보는 일은 이 땅에 사는 우리 모두의 의무가 되었다. 우리가 함께 연대하지 않으면, 미래는 없다. 우리 각자가 지금보다는 조금 불편한 삶을 살아야 한다. 시대의 요구에 따라 환경을 위한 움직임을 시작해야 할 때다.



내가 선택한 방법은 '제로 웨이스트 실천'과 '비건 지향'이다. 일상 속 나의 행동과 식습관을 조금씩 바꾸어 나가며, 기후위기에 대처하고자 한다. 지구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수시로 떠올려 보려고 한다. 오늘 갑자기 철저한 환경주의자가 될 수는 없지만, '조금씩'이 곧 미래를 바꾼다고 믿는다. 큰 변화에는 언제나 작은 계기가 있다고 하지 않는가.



이태원의 플랜트(PLANT)도 비거니즘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알게 된 곳이다. 서울 곳곳의 비건 식당을 주기적으로 찾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재방문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음식의 맛이나 양, 가격 면에서 아쉬웠기 때문이다. 플랜트는 유일하게 여러 번 방문한 비건 식당이다. 식사를 하기에도, 가볍게 커피와 디저트를 즐기기에도 좋은 곳이었다. 무엇보다 비건이 아닌 사람을 자신 있게 데려갈 수 있을 만큼, 훌륭한 맛과 넉넉한 양을 자랑한다.



플랜트의 메뉴는 사진으로 자세히 남겨 두겠다. 버거, 파스타, 샌드위치, 샐러드 등의 식사와 케이크와 쿠키 등의 디저트가 있다. 음료 또한 커피, 티, 주스 등과 더불어 맥주, 와인 등 선택권이 아주 폭넓다. 물론 이곳의 모든 메뉴는 100% 비건이다. 첫 방문 시 주문했던 메뉴는 후무스&볶은 단호박 샐러드와 두부&청경채 토마토 수프, 레드벨벳 컵케이크, 레몬그라스 티였다. 그다음에는 파히타 볼, 두부 시저 랩, 말차 컵케이크, 아이스 아메리카노 등을 먹어 보았다.



신선한 야채가 빚어내는 음식의 맛도 풍부했고, 한 메뉴의 양이 1.5인분~2인분은 될 정도로 넉넉한 편이었다. 후무스나 파히타는 이국적인 향신료를 사용해 쉽게 물리지 않고 간이 적당했다. 음료의 경우 대체적으로 무난했다. 요리의 수준에는 못 미치는, 평범한 커피와 차였다. 이곳에 갈 때마다 공교롭게도 채식주의자가 아닌 친구들과 함께였는데, 모두 선입견을 깰 만큼 음식이 맛있었다는 평을 남겼다. 언리미트 고기(콩으로 만든 대체육)가 들어간 파히타를 맛본 한 친구는 '비건이 조금은 쉬워지는 맛'이라는 찬사를 남기기도 했다.



플랜트의 인테리어는 이름처럼 식물이 가득했다. 따듯한 색감의 알전구와 각종 화분, 원목 테이블이 한데 어우러져 포근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무엇보다 이태원의 이국적인 분위기를 한껏 느낄 수 있었다. 요리사와 종업원부터 손님들까지 90%가 외국인이었기 때문이다. 곳곳에서 낯선 언어가 들려오고, 독특한 향신료가 들어간 요리를 맛보니 '여행하는 기분'이 들었다. 내게 있어 여행의 기분이란 일상이 낯설게 다가와 잔잔한 설렘이 일렁이는 어떤 느낌이다. 여러 지구인들의 활기를 생생히 경험하며, 편안하고 즐겁게 식사를 즐겼다.



사실 누군가에게 '비건을 지향하자'라고 권하는 것은 그 자체로 폭력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기꺼이 할 수 있는 부분은 스스로 고기를 줄여 나가는 것과 그리고 좋은 비건 식당을 넌지시 소개하는 일이다. 나의 선택이 내일의 지구를 바꿀 수 있다는 믿음에 용기를 더해준 글이 있었다. 얼마 전에 읽은 이슬아 작가의 '식습관이 날씨를 바꾼다'는 제목의 기사였다. 그 일부를 아래 남겨 두겠다. 선택은 온전히 개인의 몫이지만, 함께할 동지가 곁에 생긴다면 나는 더없이 환영할 것이다.



"오늘 내가 고기를 먹지 않는 행동이 기업과 과학과 정치를 움직인다. 동물성 식품 소비를 줄이는 건 개인이 기후위기에 대처하는 몹시 효과적인 행동이다. 자신의 선택이 모두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믿음이 자아도취적으로 들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보다 나쁜 건 자신의 선택이 아무한테도 영향을 주지 못한다고 믿는 자아도취다.


글쓰기 수업에서 나는 우리 모두가 얼마나 굉장한 개인인지를 가르친다. 동물을 얼마만큼 먹느냐에 따라 직접적으로 기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우리의 식습관이 미래의 날씨를 바꾼다.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말대로 ‘우리가 날씨다’. 전 지구인의 총동원이 필요한 이 시대에 당신은 어떤 습관을 바꾸며 자신을 동원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나에게 없는 지혜가 당신에게 있을 것이다. 우리는 분명 서로에게 배울 수 있을 것이다. 고기를 먹지 않는 동지로서 당신을 기다리겠다." - 21.03.22 경향신문 [날씨와 얼굴] 中





플랜트

서울 용산구 보광로 117 2층

02-749-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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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6, 2021

Editor 길보경  instagr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