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작한 일상에 온기를 더하는 커피의 시간

최근 한 커피 유튜버를 알게 되었다. 그는 호주에서 바리스타로 일하며 깨달은 철학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전달하고 있다. 동묘, 연남동 공원, 성수 등 거리 곳곳에 노상 가판대를 설치하고, 커피를 내려 사람들에게 무료로 나누어 준다. 그가 이렇게 하는 이유는 단순히 ‘좋은 커피란 무엇인가’를 전달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자신을 찾아오는 손님들과 소통하며 친구가 되는 문화를 만들고자 꾸린 멋진 프로젝트다. 한두 마디 대화를 건네며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고, 즐겁게 대화를 하는 순간이 그에겐 가장 값진 순간이라고.



그를 떠올리며 성수동의 모멘토 브루어스를 찾았다. 이곳 또한 호주 기반의 마켓레인 커피(Market Lane Coffee)에서 바리스타로 활동한 청년들이 운영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호주에는 자연스럽게 자리한, 바리스타-손님 간의 대화를 나누는 문화가 과연 이곳에도 스며들어 있을까 궁금했다.
모멘토 브루어스는 2019년 2월 뚝섬역 근처 조용한 골목에 자리하고 있다. 보기만 해도 가슴이 뻥 뚫리는 시원한 파란색 문에 새겨진 로고가 이곳의 시그니처 이미지. 호주식 커피를 선보이는 곳으로 이미 명성이 자자해, 훌륭한 커피 맛을 보기 위해 방문하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다. 이날도 실내외 할 것 없이 많은 사람들이 모멘토 브루어스를 오갔다.


사전에 아무 정보 없이 우연히 이곳을 방문했다면, 호주보다는 영국이나 독일 스타일의 카페라고 느꼈을 것 같다. 단정한 화이트톤에 화려하지 않은, 익숙하고 편안한 분위기의 카페였다. 요즘은 빈틈없이 꼭꼭 채워놓은 공간보다는 비움과 여백이 있는 공간이 좋아서 일까. 모멘토 브루어스의 여유롭고 민낯 같은 실내 인테리어에 곧장 매료되었다. 불규칙적으로 놓아둔 박스형 테이블이나 무심하게 걸린 그림들 그리고 흰벽에 마구 붙여둔 폴라로이드 사진들은 한층 친근감을 느끼게 했다.



입구로 들어서자 바로 주문대가 보였고, 세명의 바리스타가 커피를 내리고 있었다. 커피 메뉴의 구성은 매우 단순했다. 블랙/ 화이트/ 필터 커피. 이밖에 쿠키, 파이, 브라우니, 휘낭시에가 디저트로 준비되어 있었다. 메뉴판을 살피며, 두 잔을 마시고 싶은데 어떻게 먹으면 될지 바리스타님께 의견을 구했다. 그랬더니 필터 커피를 먼저 마시고, 이후에 블랙이나 플랫화이트를 마시면 좋을 것 같다고 답하셨다.

오늘의 선택은 볼리비아산 원두로 내린 필터커피. ‘페드로 플로레스(Pedro Flores)’라는 이름이었고, 빨간 사과와 천도복숭아 그리고 복숭아 차 향을 지녔다고 한다. 잠시 후, 바리스타분께서 커피를 내어 주시며, 간단히 설명을 해주셨다. 생산자의 얼굴과 커피 정보가 담긴 작은 카드와 함께. 놀라웠던 지점은 주문한 지 2~3분도 안되어 커피가 나온 것. 드립 커피인데 이렇게 빨리 나올 수 있었던 이유는, 배치 브루(Batch brew) 방식으로 추출한 커피이기 때문이라고. 주문을 받고 드립을 내리는 것이 아닌, 특정 기계로 커피를 추출해 놓고 주문이 들어오면 얼음을 담아 만든다고 한다.
그녀의 친절한 설명은 ‘알고 마시는 즐거움’을 더해 주었다. 페드로 플로레스 커피는 실로 햇살과 같은 맛이었다. 커피라기보다는 홍차에 가까운. 은근 쌉싸름한 맛이 강해, 차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어려워할 맛이다. 과실 향이 우아하게 퍼지며, 끝 맛엔 말린 차의 깔끔한 향이 났다.

한잔을 금세 비워내고, 플랫 화이트를 주문했다. 아이스로 주문하는 경우에는 시즈널 에스프레소 원두로 제공한다고 한다. 모멘토 브루어스의 가장 대표적인 원두로, 구운 헤이즐넛과 오렌지 그리고 브라운 슈가의 풍미를 지녔다. 사실 우유가 들어간 커피를 마실 땐, 산미가 있는 원두를 선호하는 편이라 선택지가 없는 것이 조금 아쉬웠다. 그래도 맛은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깊고 진한 맛보다는 담백하고 우아한 편에 가까웠다.
모멘토 브루어스에는 단골손님이 많아서인지, 바리스타와 손님 간의 스몰 토크를 나누는 문화가 자연스레 자리 잡은 듯했다. 내게 커피 정보를 알려주신 바리스타님도 그렇지만 다른 분들도 너무나 친절하고 포근하게 손님을 맞이해주셨다.

커피 한 잔을 어떻게 대하는지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때로 이 작은 존재가 우리의 납작한 일상에 온기를 더하기도 한다. 일상 속에서 만들어가는 소소한 관계, 기분 좋은 대화는 곧 ‘삶의 에너지’로 이어진다. 비슷한 취향과 가치관으로 이어진 만남이라면 더없이 각별해진다. 앞서 언급한 커피 유튜버 역시, 커피를 내리며 사람들과 친구가 되었을 때 삶이 풍족해지는 것 같았다고 한다. 그에게 커피는 단순한 음료가 아닌,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매개체인 것. 좋은 커피와 사람이 있는 곳은 어디에나 있다. 성수동에 갈 일이 있다면 모멘토 브루어스를 떠올리길 바란다.
+추가 정보
H커피로스터스(@h_coffee_roasters), 메쉬커피(@meshcoffee) 또한 근처의 유명한 커피바이다.
두 곳 모두 스페셜티 커피를 직접 로스팅해 판매하는 매장이기도 하다. H커피는 도회적이고 감각적인 인테리어가 돋보이며, 메쉬는 노르딕 로스팅 스타일을 기반으로 자유롭고 다이내믹한 서울의 힙한 바이브를 지녔다. 성수동 카페거리를 자유롭게 거닐며 느낌이 좋은 카페로 향해 보기를.
모멘토 브루어스
서울 성동구 서울숲2길 19-18 1F
010-4883-3844
Instagram
July 6, 2021
Editor 길보경 instagram
납작한 일상에 온기를 더하는 커피의 시간
최근 한 커피 유튜버를 알게 되었다. 그는 호주에서 바리스타로 일하며 깨달은 철학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전달하고 있다. 동묘, 연남동 공원, 성수 등 거리 곳곳에 노상 가판대를 설치하고, 커피를 내려 사람들에게 무료로 나누어 준다. 그가 이렇게 하는 이유는 단순히 ‘좋은 커피란 무엇인가’를 전달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자신을 찾아오는 손님들과 소통하며 친구가 되는 문화를 만들고자 꾸린 멋진 프로젝트다. 한두 마디 대화를 건네며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고, 즐겁게 대화를 하는 순간이 그에겐 가장 값진 순간이라고.
그를 떠올리며 성수동의 모멘토 브루어스를 찾았다. 이곳 또한 호주 기반의 마켓레인 커피(Market Lane Coffee)에서 바리스타로 활동한 청년들이 운영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호주에는 자연스럽게 자리한, 바리스타-손님 간의 대화를 나누는 문화가 과연 이곳에도 스며들어 있을까 궁금했다.
모멘토 브루어스는 2019년 2월 뚝섬역 근처 조용한 골목에 자리하고 있다. 보기만 해도 가슴이 뻥 뚫리는 시원한 파란색 문에 새겨진 로고가 이곳의 시그니처 이미지. 호주식 커피를 선보이는 곳으로 이미 명성이 자자해, 훌륭한 커피 맛을 보기 위해 방문하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다. 이날도 실내외 할 것 없이 많은 사람들이 모멘토 브루어스를 오갔다.
사전에 아무 정보 없이 우연히 이곳을 방문했다면, 호주보다는 영국이나 독일 스타일의 카페라고 느꼈을 것 같다. 단정한 화이트톤에 화려하지 않은, 익숙하고 편안한 분위기의 카페였다. 요즘은 빈틈없이 꼭꼭 채워놓은 공간보다는 비움과 여백이 있는 공간이 좋아서 일까. 모멘토 브루어스의 여유롭고 민낯 같은 실내 인테리어에 곧장 매료되었다. 불규칙적으로 놓아둔 박스형 테이블이나 무심하게 걸린 그림들 그리고 흰벽에 마구 붙여둔 폴라로이드 사진들은 한층 친근감을 느끼게 했다.
입구로 들어서자 바로 주문대가 보였고, 세명의 바리스타가 커피를 내리고 있었다. 커피 메뉴의 구성은 매우 단순했다. 블랙/ 화이트/ 필터 커피. 이밖에 쿠키, 파이, 브라우니, 휘낭시에가 디저트로 준비되어 있었다. 메뉴판을 살피며, 두 잔을 마시고 싶은데 어떻게 먹으면 될지 바리스타님께 의견을 구했다. 그랬더니 필터 커피를 먼저 마시고, 이후에 블랙이나 플랫화이트를 마시면 좋을 것 같다고 답하셨다.
오늘의 선택은 볼리비아산 원두로 내린 필터커피. ‘페드로 플로레스(Pedro Flores)’라는 이름이었고, 빨간 사과와 천도복숭아 그리고 복숭아 차 향을 지녔다고 한다. 잠시 후, 바리스타분께서 커피를 내어 주시며, 간단히 설명을 해주셨다. 생산자의 얼굴과 커피 정보가 담긴 작은 카드와 함께. 놀라웠던 지점은 주문한 지 2~3분도 안되어 커피가 나온 것. 드립 커피인데 이렇게 빨리 나올 수 있었던 이유는, 배치 브루(Batch brew) 방식으로 추출한 커피이기 때문이라고. 주문을 받고 드립을 내리는 것이 아닌, 특정 기계로 커피를 추출해 놓고 주문이 들어오면 얼음을 담아 만든다고 한다.
그녀의 친절한 설명은 ‘알고 마시는 즐거움’을 더해 주었다. 페드로 플로레스 커피는 실로 햇살과 같은 맛이었다. 커피라기보다는 홍차에 가까운. 은근 쌉싸름한 맛이 강해, 차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어려워할 맛이다. 과실 향이 우아하게 퍼지며, 끝 맛엔 말린 차의 깔끔한 향이 났다.
한잔을 금세 비워내고, 플랫 화이트를 주문했다. 아이스로 주문하는 경우에는 시즈널 에스프레소 원두로 제공한다고 한다. 모멘토 브루어스의 가장 대표적인 원두로, 구운 헤이즐넛과 오렌지 그리고 브라운 슈가의 풍미를 지녔다. 사실 우유가 들어간 커피를 마실 땐, 산미가 있는 원두를 선호하는 편이라 선택지가 없는 것이 조금 아쉬웠다. 그래도 맛은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깊고 진한 맛보다는 담백하고 우아한 편에 가까웠다.
모멘토 브루어스에는 단골손님이 많아서인지, 바리스타와 손님 간의 스몰 토크를 나누는 문화가 자연스레 자리 잡은 듯했다. 내게 커피 정보를 알려주신 바리스타님도 그렇지만 다른 분들도 너무나 친절하고 포근하게 손님을 맞이해주셨다.
커피 한 잔을 어떻게 대하는지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때로 이 작은 존재가 우리의 납작한 일상에 온기를 더하기도 한다. 일상 속에서 만들어가는 소소한 관계, 기분 좋은 대화는 곧 ‘삶의 에너지’로 이어진다. 비슷한 취향과 가치관으로 이어진 만남이라면 더없이 각별해진다. 앞서 언급한 커피 유튜버 역시, 커피를 내리며 사람들과 친구가 되었을 때 삶이 풍족해지는 것 같았다고 한다. 그에게 커피는 단순한 음료가 아닌,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매개체인 것. 좋은 커피와 사람이 있는 곳은 어디에나 있다. 성수동에 갈 일이 있다면 모멘토 브루어스를 떠올리길 바란다.
+추가 정보
H커피로스터스(@h_coffee_roasters), 메쉬커피(@meshcoffee) 또한 근처의 유명한 커피바이다.
두 곳 모두 스페셜티 커피를 직접 로스팅해 판매하는 매장이기도 하다. H커피는 도회적이고 감각적인 인테리어가 돋보이며, 메쉬는 노르딕 로스팅 스타일을 기반으로 자유롭고 다이내믹한 서울의 힙한 바이브를 지녔다. 성수동 카페거리를 자유롭게 거닐며 느낌이 좋은 카페로 향해 보기를.
모멘토 브루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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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y 6, 2021
Editor 길보경 instagr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