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희동, 올드프렌드(Old Friend)

오랜 친구의 편안함을 닮은 공간 그리고 커피




평일을 정신없이 흘려보내고 나면, 쉬는 날 만큼은 조금 흐트러지고 싶다. '효율'을 최우선의 가치로 두고 경직된 상태로 지낸 나날들과는 다른 어떤 하루가 필요했다. 긴장과 압박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의 시간을 담뿍 누리는, 그런 쉼. 영혼에 맑은 에너지를 불어넣고, 일상을 회복하는 시간. 그런 시간들이 쌓여 삶을 바로 세우는 힘이 된다.



휴가를 쓴 어느 날, 맨 얼굴에 헐렁한 바지와 운동화 차림으로 동네를 산책했다. 그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은 행색이지만 나에겐 가장 정직하고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여느 때처럼 정처 없이 걷다 카페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동네의 카페들은 편하게 가기에는 조금은 부담스럽데 다가왔다. 사람들이 멋을 내고 놀러 오는, 소위 뜨는 동네로 자리 잡으니 내부에 자리가 없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그 어떤 방해 요소 없이 쉼을 만끽하고 싶은 오늘이기에, 한적한 골목길로 방향을 틀었다.



그러다 마주한 올드프렌드. 작은 입간판에 쓰인 로고가 흥미로워 인스타그램으로 검색해 보았다. 새로 생긴 카페처럼 보였는데 작년 가을 즈음 오픈한 듯 보였다. 게시물의 글을 읽자마자 제대로 찾았음을 직감했다. 

"언제 만나도 편안한 나의 오랜 친구처럼 좋은 한 잔을 마신 후에 날숨에 의해 코 끝에 걸친 향, 그 향이 하루 종일 맴돌며 오늘을 이롭게 할 수 있기를, 그런 오늘이 모여 모두 더 나은 삶을 느낄 수 있기를. 그런 삶에 함께하는 당신의 oldfriend이기를! oldfriend는 good day를 노력합니다. (중략) 그다지 행색에 신경 쓰지 못한 날도 부담 없이 편하게 즐길 수 있는, 그런 공간, 그런 브랜드 이기를 소망하며 그러기를 힘씁니다."



내 마음을 읽은 듯한 문장들이 반가워 단숨에 계단을 올랐다. 2층에 위치한 올드프렌드는 말 그대로 숨은 보석 같은 존재였다. 하얀 벽면과 우드 소재의 바 테이블과 계단형 의자, 곳곳에 놓인 연두색 식물들은 단정하고 따스한 인상을 자아냈다. 바 테이블 뒤로는 가로로 긴 유리창 너머로 연희동 단독주택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주인장의 취향을 엿볼 수 있는 그림, 빈티지 카메라, 라디오, 미니어처 자동차 등은 편안한 무드를 완성하는 요소. 나무 수납장 안에 규칙성 없이 칸칸이 보관한 물건들이 가득해, 하나하나 살펴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올드프렌드의 메뉴는 세 가지이다. 블랙 커피, 밀크 커피 그리고 낫 커피. 바리스타님께 원하는 커피를 말씀드리면 무엇이든 만들어 주신다. 보통의 카페 메뉴와 차별점을 두었다는 점이 재미있다. 작은 부분일지라도 위트를 더하면, 소비자에게 특별한 인상을 남길 수 있다. 나는 블랙과 밀크 커피를 두루 마셔 보고 싶어 우선 플랫화이트를 주문했다.



매장에 울려 퍼지는 음악은 아메리칸과 브리티시 팝송이었다. 주로 앨범 단위로 음악을 틀어주시는 듯했다. 내가 머무는 동안에는 케빈 크라우터(Kevin Krauter)의 연달아 흘러나왔다. 그의 [Toss up] 앨범에 수록된 ‘Rollerskate’, ‘Lonely Boogie’, ‘Barely on My mind’ 등이었다. 어쿠스틱한 사운드와 컨츄리 록 스타일의 음색이 이 공간과 잘 어울린다고 느껴졌다.



바리스타님께서 플랫화이트를 자리로 가져다주시며, 가능한 한 빨리 드시길 바란다고 하셨다. 얼음이 녹기 전에 커피와 우유의 오롯한 배합을 맛보기 원하는 마음이라고. 그의 말을 듣고 곧장 한 모금을 마셔 보았다. 그 순간 이곳에서는 절대 한 잔만을 마실 수 없겠다고 확신했다. 아주 훌륭한 수준의 플랫화이트였다. 얕은 산미와 그윽한 풍미가 조화를 이루며 깊은 맛을 선사했다.



금세 한잔을 비우고, 에스프레소를 주문했다. 이탈리안 에스프레소바처럼 설탕과 물을 함께 내어 주신다. 원두 본연의 맛을 경험할 수 있는 에스프레소 역시 탁월한 선택이었다. 올드프렌드의 원두가 궁금해 여쭤 보니, 세 가지 이상의 생두를 블렌딩해서 로스팅하셨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싱글 오리진보다 저마다의 안목을 담은 블렌딩 원두를 선호한다. 바리스타의 노고가 깃든 부분이기도 하고, 매번 조금씩 변화하는 원두를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좋은 커피는 곧 하루를 잘 보낼 수 있는 힘이 된다. 언제든 ‘전환’의 힘을 선사한다는 점에서 커피의 존재는 삶에서 꽤 중요한 존재가 되었다. 올드프렌드는 그런 내게 언제나 든든한 이웃이 되어줄 것만 같다. 마치 언제 만나도 편안한, 오랜 친구처럼.



+추가 정보

올드프렌드 주변에는 감각적이고 트렌디한 숍이 다수 위치한다. 편지 가게 글월(@geulwoll.kr), 라이프스타일숍 그로브(@shop.grove) 등을 함께 방문해 보시길. 연희동의 랜드마크인 피터팬 빵집도 근처에 있으니 참고할 것.



올드프렌드

서울 서대문구 연희로25길 37 2층 올드프렌드
0507-1310-0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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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 29, 2021

Editor 길보경  instagr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