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정동, “무슈부부커피스탠드”

일상에 스며든 로컬 에스프레소바




아침은 하루 중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다. 원래는 한낮을 더 좋아했지만, 어느 날 일출의 풍경을 목도하고 나서부터 그 생각이 바뀌었다. 동이 트기 직전 산책을 나갔을 때였다. 저 멀리 보이는 남산 타워의 뒤편에서 떠오르던, 하늘을 집어삼킬 듯한 붉은 해의 잔상이 여전히 기억 속에 뚜렷하게 남아 있다. 푸른빛이 감돌던 세상이 이내 아름답게 밝아지던 순간, 놀랍게도 내 마음에는 어떤 희망이 차올랐다. 이런 아침을 매일 맞이한다면 인생이 결코 망하지는 않겠구나. 어떤 식으로든 잘 흘러갈 것만 같은 느낌에 휩싸였다.

그렇게 아침 산책이 나의 ‘모닝 루틴’으로 자리를 잡았다. 집으로 돌아오면 에스프레소에 가까운 아메리카노를 내려 마신다. 이때 마시는 커피 한 잔은, 마치 산속에서 먹는 라면 같은 느낌이랄까. 곱절은 더 맛있게 느껴진다. 커피의 향과 맛은 감각을 일깨우는 동시에 아침의 고요를 더없이 그윽하게 만들어 준다. 기분 좋은 아침은 곧 안녕한 하루를 만들기에 나름의 루틴을 지키며 살고 있다.



매일 커피를 마시다 보니, 자연스레 취향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산미가 강한 커피를 선호한다. 이왕이면 에스프레소 스타일. 천천히 음미하며 마시기보다는 뜨거울 때 빠르게 마시는 에스프레소가 잘 맞는 편이었다. 요즘 우리나라에 근사한 에스프레소 바가 유행처럼 생겨 나고 있는데, 오래 전부터 에스프레소 문화를 전하는 공간이 있다. 바로 합정과 망원 사이, 조용한 주택가에 자리한 ‘무슈부부커피스탠드’이다.



무슈부부커피스탠드는 생각보다 더 외진 곳에 위치했다. 정겨운 분위기가 가득한 어느 초등학교를 지나, 주거 지역으로 들어서자 눈에 띄는 작은 건물을 발견할 수 있었다. 상아색의 벽과 커피를 쏟아 번진듯한 간판, 위트 넘치는 스티커가 잔뜩 붙은 벽면은 편안하고 친근한 느낌을 자아냈다. 파리의 어느 골목길에 있을법한 이곳엔 세월의 흔적을 품은 것들로 가득했다. 원래의 용도를 알 수 없는, 출처 모를 각종 부자재가 인테리어의 요소로 쓰인 것을 보니 주인장의 센스가 보통이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무슈부부커피스탠드는 망원동에서 유명했던 카페 부부의 사장님들께서 3년 전 자리를 옮겨 새롭게 연 카페 겸 바이다. 에스프레소 중심의 커피와 각종 티, 칵테일, 위스키 등을 제공한다. 무슈는 불어로 아저씨를 뜻하는데, 남자 사장님의 취향을 고스란히 담은 공간이라는 뜻을 담아 이름 지었다고 한다. 실로 공간을 가득 메운 가구와 오브제, 테이블웨어를 보니, ‘빈티지’라는 취향이 짙게 묻어났다. 오래된 것들이 주는 아늑함에 파묻힌 듯, 시선이 닿는 곳마다 편안했다.



에스프레소를 활용한 창작 음료가 가득한 이곳에서는 결코 한잔만 맛볼 수 없을터. 기대감을 안고 첫 잔으로 레몬로마노를 주문했다. 기존 로마식 에스프레소를 좀 더 특별하게 즐길 수 있도록 만든 무슈부부커피스탠드만의 메뉴이다. 에스프레소에 설탕을 넣고, 레몬 한 조각을 얹은 형태였다. 사장님께서는 커피를 전해주시며, 먹는 방법을 친절히 설명해 주셨다. 먼저 에스프레소를 맛본 후에, 바닥에 남은 커피와 설탕을 섞어 레몬에 얹어 먹으면 된다고. 이후 탄산수로 입을 헹굴 것을 권하셨다. 



평소 레몬이 들어간 음료를 즐기는 나에겐 매우 호감이 가는 맛이었다. 중후한 맛의 에스프레소를 마신 후, 달달한 커피 설탕을 얹은 레몬을 먹으니 전체적인 밸런스가 훌륭했다. 달달하면서 상큼한 맛이 경쾌하게 다가왔다. 다음으로 크림콘파나. 수제 바닐라설탕에 에스프레소와 크림을 올려 만든다. 부드러운 크림과 커피의 궁합은 언제나 옳은 법. 기본 에스프레소의 맛이 좋으니, 몇 잔을 마셔도 부담스럽지 않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코르타도를 주문했다. 코르타도는 스페인식 라떼로, 플랫화이트랑 비슷한데 우유가 조금 덜 들어간 형태이다. 앞서 맛이 강렬한 음료를 맛보았기 때문인지 코르타도는 비교적 평범했다. 기대했던 맛보다는 조금 밍밍한 느낌? 다음번에는 라떼와 비교하며 먹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슈부부커피스탠드는 기본에 충실한 맛, 편안한 공간, 친절한 주인장 등 로컬 에스프레소 바로서의 미덕을 탄탄히 갖추었지만, 사실 여운을 남긴 부분은 이곳만의 디테일에 있었다. 타자기처럼 생긴 오래된 기계로 주문을 받고, 커피를 제공하는 동시에 먹는 방법을 설명해 주며, 마지막에 커피의 맛이 어땠는지 묻는. 이곳엔 커피를 향유하는 시간을 좋은 경험으로 만들어 주는 작은 요소들이 다수 존재했다. 첫 방문이 다음 방문으로 이어지는 데에는 디테일의 힘이 작용하는 것이 아닐까. 좋아하는 사람에게 소개하고 싶은, 근사한 곳.


+추가 정보

서울에는 알고 보면 꽤 많은 에스프레소 바가 있다. 에스프레소를 하나의 장르로 떠오르게 한 ‘리사르 커피(@leesarcoffee)’부터 에그타르트와 커피를 세트로 제공하는 ‘쏘리 에스프레소(@sorry_espressobar)’ 그리고 최근 주목받기 시작한 이탈리안 정통 스타일의 몰또 에스프레소(@molto_espressobar)까지. 이밖에도 동네마다 유명한 곳이 한 군데 이상 있을 것이다. 앞서 소개한 무슈부부커피스탠드는 12시 이후에 오픈하지만, 웬만한 에스프레소 바는 오전 일찍부터 문을 연다. 이른 아침, 에스프레소로 하루를 열어 보는 건 어떠신지.



무슈부부커피스탠드
서울 마포구 양화로3길 7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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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ember 9, 2021

Editor 길보경  instagr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