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희동, “비하인드 리메인”

연희동 주택가에서 인생 프렌치토스트를 맛보다  


누구에게나 ‘소울 푸드’가 있다. 나 또한 나만의 소울 푸드가 있는데, 그중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이 바로 ‘프렌치토스트’다. “27년을 한국에서 먹고 자랐는데 웬 서양 음식이 소울 푸드냐”고할 수 있겠지만, 어렸을 적 아빠는 학교에서 돌아온 나와 동생들을 위해 간식으로 프렌치토스트를 만들어주시곤 했다. 휘황찬란하고 럭셔리한 그런 디저트가 아닌 소박한 토스트였다. 


볼에 달걀을 풀고 우유를 섞은 뒤 식빵을 담근다. 그 후 프라이팬에 버터를 충분히 두르고 빵을 노릇하게 굽는다. 고소하고 달짝지근한 냄새가 나기 시작하면 접시에 옮겨 담고, 그 위에 설탕을 솔솔 뿌리면 완성이다. 새하얀 우유와 함께 먹었던 아빠표 프렌치토스트. 그 시절 어떠한 초코과자나 불량식품보다 맛있었다.  


프렌치토스트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프랑스의 대표 요리 중 하나이다. 그러나 정작 프랑스인들은 ‘pain perdu’라고 부르는데, 이를 해석하면 ‘잃어버린 빵’, ‘소용없는 빵’이라는 뜻이다. 프랑스에서는 주로 먹고 남은 딱딱한 빵이나 시간이 지나 맛이 없어진 바게트를 버리지 않고 재활용할 목적으로 빵을 노릇하게 굽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훗날 지금의 프렌치토스트가 되었다. 

오늘날 전 세계인이 사랑하는 브런치 메뉴로도 언급된 바 있는 프렌치토스트. 우리나라에서는 연희동에서 그 달콤함과 부드러움을 느낄 수 있다. 



연남동이 젊은이들로 북적이는 동네라면 연희동은 그에 반해 훨씬 한적하고 고요하다.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주택과 아기자기한 상점, 카페가 있는 골목을 좀 걷다 보면 커다란 주택이 보인다. 정문 안으로 들어서면 푸른 소나무와 매실나무가 그 자태를 뽐내고 있고, 잎사귀 사이사이엔 잔잔한 햇살이 스며있다. 제법 큰 나른한 오후의 정원이었다. 대문을 기준으로 오른쪽은 독립서점, 왼쪽엔 카페 그리고 소품샵 및 쥬얼리샵이 있다.



계단을 오르고 테라스를 지나 카페 안으로 들어서면 바로 카운터가 있다. 비하인드 리메인의 시그니처는 바로 ‘키오스크 프렌치토스트’다. 키오스크 토스트는 망원동 ‘어쩌다가게’에서 판매 중인 프렌치토스트로, 그 인기가 대단해 연희동에서까지 그 맛을 경험할 수 있도록 했다. 내부는 카운터 옆에 놓인 바 테이블 10좌석과 2인석 5테이블, 그리고 테라스 좌석이 있다.



평일 낮 시간대에 가니 손님이 한 테이블밖에 없었다. 그전 주말에 방문했을 땐 테라스까지 손님이 꽉 차 있어 자리를 잡기 어려웠는데, 모쪼록 여유로운 기분을 만끽할 수 있어 좋았다. 

나는 아이스바닐라라떼와 절인 블루베리가 올라간 프렌치토스트를 주문했다. 매장엔 대부분 뉴에이지나 클래식한 음악이 흘렀다. 손님 대부분이 음료 메뉴와 더불어 토스트를 시키곤 해서 기다리는 내내 카페에서 달짝지근한 토스트 굽는 냄새가 퍼지기도 했다. 



토스트는 굽는 데 조금 시간이 걸려 기다리는 사이 음료가 먼저 나왔다. 바닐라라떼는 평범했다. 다만 우유의 고소함보단 시럽의 맛이 더 두드러졌는데 그 맛이 그리 강하지 않아 괜찮았다. 뒤이어 나온 블루베리 키오스크 토스트. 겉은 얇게 그을러 바삭하고 안은 촉촉해 푸딩을 떠먹는 것 같이 부드러웠다. 절인 블루베리를 얹어 함께 먹으니 상큼 달달하면서 그 조화가 매우 좋았다. 또 계란 물에 오래 담가서인지 계란의 고소한 향도 느껴졌으며, 슈가파우더의 달달함까지 전해져 정말 맛있었다.

키오스크 토스트의 종류는 다양하다. 절인 블루베리와 절인 딸기, 바닐라 아이스크림, 초코릿 크림 바나나, 아몬드 허니 크림치즈 등 여러가지가 있어 취향에 따라 즐기면 좋다.



커피 메뉴로는 아메리카노 위에 달달한 크림이 올라간 비엔나커피가 유명하다. 토스트의 크기는 크지 않아 1인이 먹기에 적절한 양으로, 보통 두세 명씩 오는 경우 기본적으로 인당 하나씩 주문하거나 두 개를 시키면 좋다. 

한편 카페를 가기 전이나 머물고 난 뒤, 옆에 위치한 독립서점 ‘유어마인드’도 함께 둘러보면 좋은데, 그곳에서 다양한 작가들의 글이 수록된 개성 있는 책들을 만나 볼 수 있다. 나 역시 마음에 드는 책 몇 권을 사 들고 빠져나왔다.



"내가 정말로 마음에 들어 했던 것은, 커피 맛 그것보다는 커피가 있는 풍경이었는지도 모르겠다고. 지금은 생각한다. 내 앞에는 저 사춘기 특유의 반짝반짝 빛나는 거울이 있고 거기에 커피를 마시는 나 자신의 모습이 또렷하게 비추어져 있었다."


프렌치토스트를 먹으면서 지난날 입가에 설탕을 묻히며 야무지게 먹었던 아빠의 프렌치토스트를 생각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저 문장처럼, 내가 정말 맛있게 먹었던 것은 프렌치토스트 그 자체가 아니라 빵을 굽는 아빠의 모습, 달짝지근한 냄새, 맑고 순수했던 내 모습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음식은 마음으로 먹는다’는 말은 백 번이고 맞는 것 같다.




비하인드 리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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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mber 11, 2020

Editor 정채영  instagr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