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희동, “뚤리”

멋스러운 디저트와 풍경이 있는, 쉬어가기 좋은 곳


잡지사의 오랜 전통 중 하나인 마감 불변의 법칙. 기사 마감일이 가까워질 때면 그 주는 야근을 밥 먹듯이 하게 된다. 최대한 추가 근무를 하지 않으려 근무 시간 내에 해결하곤 하지만, 마감 주가 되면 다들 예민해지고 생각이 많아진다. 엎치락뒤치락 어찌저찌 원고를 다 넘기고 교정까지 마무리하면 그제서야 한숨 돌린다. 그렇게 이번호도 잘 완성해내면, 그 주 주말엔 꼭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다. 바빠진 마음을 비워내고 그저 쉬기 위해서다. 읽고 싶었던 책도 보고 산책도 하고 커피도 마시고. 이렇게 재충전의 시간이 필요할 때 찾는 카페가 있다.



뚤리(tuuli)는 쉼과 여유가 묻어 있는 곳이다. 그래서인지 이곳을 향하는 발걸음은 늘 가볍고 산뜻하다. 홍제천을 바라보며 나뭇잎이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리는 풍경을 조용히 감상할 수 있는 곳. 핀란드어로 ‘바람’이라는 뜻의 뚤리는 차분한 공간 속 일상의 환기를 느끼길 바라는 마음에서 지어졌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새하얗고 투명하다. 특별할 것 없는 인테리어지만 곳곳에 놓인 화사한 색감의 꽃과 식물들은 공간에 생기를 불어넣곤 한다. 

 

뚤리는 클래식한 구움과자와 계절 과일을 활용한 디저트를 선보이는 곳이다. 바삭하고 고소한 구움과자에는 레몬 마들렌, 피스타치오 다쿠아즈, 갈레트 브루통 그리고 바닐라 휘낭시에가 있다. 흩날리는 벚꽃을 닮은 여리여리한 사장님께선 늘 예술에 가까운 디저트를 만들어 내시는데, 봄을 맞이해 선보인 ‘백조슈’는 이미 SNS에서 핫할 만큼 그 인기가 좋다. 백조슈는 큼지막한 딸기를 품은 슈다. 카카오 맛이 진한 초코크림과 딸기크림이 꽤나 조화로워 많이 달지도, 물리지도 않다.



내부는 다소 협소하다. 2인석 5개가 전부. 큰 소리로 대화하는 것과 2인 이상의 방문을 지양하는 곳이다. 내가 이곳을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조용한 음악과 넓은 창이다. 주말의 경우 웨이팅이 있어 다소 시끄러울 순 있겠지만. 평일 오후 시간대엔 매장 전체에 아늑한 클래식과 책장 넘기는 소리 그리고 원두 가는 소리만 들릴 뿐이다.

커피는 ‘이미커피로스터스’의 ‘주블렌드’ 원두를 사용한다. 초콜렛티하고 묵직한 맛이 특징이다. 내가 자주 마시는 음료는 ‘바닐라빈라떼’다. 뚤리의 바닐라빈라떼는 다른 곳에 비해 당도가 어느 정도 있는 편이다. 그러나 인위적인 시럽 맛이 아닌 기분 좋은 달달함이다. 여쭈니 ‘루아르커피바’의 시럽을 받아쓰신다고 한다.



공간이 차분한 만큼, 디저트도 하나같이 부드럽다. 가장 처음 먹었던 디저트 ‘에스까르고’. 둥그렇게 말린 게 꼭 달팽이 같아 붙여진 이름이다. 은은한 화이트 크림을 덧칠한 비스퀴에 초코 커스터드 크림을 넣은 에끌레어 그리고 바나나, 키위, 체리 등의 과일을 품은 산뜻한 롤케이크다. 지금은 판매하고 있지 않은 메뉴라 아쉽지만 올여름 다시 한 번 맛볼 수 있길 기대해본다. 지난가을 먹었던 뚤리의 공주밤 몽블랑. 시중의 밤 페이스트를 사용하지 않고 직접 만들었다. 여기에 달콤한 바닐라크림으로 마무리해 입안 가득 가을의 정취를 물씬 느낄 수 있다.



뚤리의 매력적인 공간은 비단 창밖이 보이는 좌석뿐만이 아니다. 베이킹 도구와 주방 도구가 나란히 놓여있는, 소박하면서도 담백한 카운터의 모습. 그래서 괜스레 주방 사진을 많이 담게 된다. 혼자만의 고요한 시간을 보내거나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대화를 나누고 싶다면 평일 및 주말 12-1시 이후의 방문을 추천한다. 나는 주로 3-4시경에 방문하곤 하는데, 애매한 시간대라 그런지 늘 담담한 분위기를 즐길 수 있어 책을 한껏 읽다 오곤 한다.

다만, 뚤리의 화장실을 처음 가는 이들이라면 매우 당황할 수 있다. 천장이 낮고 공간이 협소하기 때문이다. 처음 한두 번은 안에서 문을 열다 문턱에 머리를 박곤 했다. 안쪽 공간도 매우 작아 성인 남성이나 키가 좀 큰 여성들이 사용하기에 불편할 수 있다.



이곳은 무엇보다 커피 한 잔 들고 산책하기에도 좋다. 탁 트인 시원한 천을 오른 편에 등지고 조용한 거리를 거닐면 저절로 자연의 매력에 동화되어 평소보다 조금 긴, 기분 좋은 숨을 내쉬게 된다.

오늘 하루 맘껏 비워내고 양껏 채워내며 평소보다 조금 천천히 걷고, 마시며, 쉬어보자.




뚤리

서울 서대문구 홍제천로 198

02-6351-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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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13, 2021

Editor 정채영  instagr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