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동이 한눈에 담기는 정원 카페
공간을 취재하는 일이 언제나 순조로운 것은 아니다. 사전 조사를 기반으로 장소를 선정하더라도, 취재 대상으로 적합하지 않음을 현장에서 깨달을 때가 종종 있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직관적인 판단이지만 '큐레이션'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한 사람의 취향이 담기기 마련이므로. 기준선에 못 미친(내 마음에 아무런 파동을 남기지 못한) 곳이라면 주저 없이 소개하지 않는다.
이번에 찾아간 이엔갤러리는 취향 좋기로 소문난 지인의 추천으로 알게 된 곳이다. 모 유명 잡지사의 편집장님께서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비밀의 공간이니, 주변에 소문내지 말라고 했다는 이곳. 지인도 왜 그런 말이 나왔는지 알만큼 좋았다고 말했다. 신뢰와 기대로 가득 부푼 상태로 평창동의 이엔갤러리를 찾았다.
평창동을 가본 적이 있는가? 부촌이라는 이미지가 강한 이 동네에는 걸어 다니는 사람이 없다. 모두가 차로 이동하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도보로 다닐만한 언덕의 경사가 아니다. 산등성이를 굽이굽이 타듯, 차를 타고 계속해서 올라가야 한다. 평지부터 언덕까지 도보로 30분 내외로 소요되기에 걷기를 택할 수도 있겠으나, 경사로를 감안하면 차를 타는 게 현명하다.
그렇게 택시를 타고 이엔갤러리로 향했다. 택시 기사님께서 길을 헤맨 탓에 평창동 곳곳의 골목길을 구경하며 갈 수 있었는데, 입이 떡 벌이지는 단독 주택이 너무나 많았다. ‘대체 저건 누가 사는 집일까’하는 궁금증이 절로 들만큼 대단한 규모와 범상치 않은 디자인의 건축물이었다.
이엔갤러리 또한 사택을 개조해 만든 공간이다. 1층과 정원은 갤러리 겸 카페로 쓰이고, 2층과 3층은 노부부가 거주한다. 외관상으로는 ‘잘 지어놓은 단독주택’의 축에 속했다. 외/내벽이 모두 콘크리트로 지어져 전반적으로 모던하고 단정한 인상을 주었다. 각진 파사드에 통유리창을 내어 놓으니 개방감이 오롯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정원의 화살표를 따라 카페의 출입구로 들어서는 순간, 산 아래의 평창동이 한눈에 들어왔다. ‘시크릿 가든’이라는 애칭을 지닐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원에는 아름다운 라일락 나무를 비롯해 각종 야생화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하얀색, 보라색, 분홍색, 노란색... 싱그러운 봄을 빛내는 꽃들의 향연이었다. 서울의 여느 카페에서 볼 수 없는 전원적 풍경에 넋을 놓으려는데, 작은 계단이 눈에 띄었다. 한걸음 한걸음 내딛을 때마다 상쾌한 풀내음이 진동했다. 야트막한 언덕의 끝에는 감탄을 뱉지 않고는 못 배길 정도로 아름다운 정원이 있었다. 곳곳에 캠핑 의자가 놓여 있어 이곳에서 커피를 마셔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엔갤러리의 내부는 여느 갤러리형 카페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기다란 나무 테이블과 작업하기 좋아 보이는 사각형의 책상이 여유롭게 놓여 있었고, 벽의 각 면에는 공예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유리부터 도예까지 영국, 일본 등의 예술가의 작품을 구경할 수 있다. 원래는 더 많은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거리두기에 맞게 내부 공간을 조정하며 지금의 형태를 띠게 되었다고 한다.
메뉴의 구성은 더없이 심플하다. 드립 커피, 블루베리 에이드, 차(말린 장미 또는 얼그레이), 과일 주스. 때때로 갓 구운 빵을 판매하기도 한다. 나는 말린 장미 차를 주문하고 야외석에 자리를 잡았다. 바리스타님께서는 곱게 내린 차를 가져다 주시며 조금 춥지 않겠냐고 염려하셨다. 그러면서 햇살 좋은 날에 언덕 위로 올라가 커피를 마시면 참 좋다는 말씀도 해주셨다. 상상하면 절로 미소를 짓게 되는 행복한 풍경이다. 나는 그에 말에 싱긋 웃어 보이며, 맑은 날 이곳을 다시 찾겠다고 답했다.
차를 음미하며 눈앞에 펼쳐진 경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서울 한복판에서 쉽사리 보기 힘든 고아한 정취다. 아파트보다는 주택이 대부분인 동네라, 제각기 다른 생김새의 지붕을 보는 일이 꽤 재미있다. 아까 택시 안에서 흐린 날 찾으면 아쉬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곳은 오히려 조금은 컴컴하고 차분한 날씨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간과 주변 환경이 고요히 숨을 쉬고 있기 때문일까. 내부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도 차분함을 더하는 가사가 없는 뉴에이지 음악이 주를 이뤘다.
공간에 관한 글을 쓰며 어떻게 하면 ‘좋은 공간’을 더욱 풍요로운 언어로 소개할 수 있을까-하는 고민을 한다. 나의 좋음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메신저’로 잘 기능하고 싶기 때문이다. 주변에서 정보를 얻고, 인터넷에서 블로그를 찾아보는 등의 수집 행위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많이 보는 행위’도 큰 공부가 된다. 좋아하는 공간을 부지런히 살피고 헤아리면서, 좋은 것을 골라내는 ‘안목’이 쑥쑥 자라나기를 나는 언제나 소망한다.
이엔갤러리
서울특별시 종로구 평창길 224
02-395-1133
instagram
May 27, 2021
Editor 길보경 instagram
평창동이 한눈에 담기는 정원 카페
공간을 취재하는 일이 언제나 순조로운 것은 아니다. 사전 조사를 기반으로 장소를 선정하더라도, 취재 대상으로 적합하지 않음을 현장에서 깨달을 때가 종종 있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직관적인 판단이지만 '큐레이션'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한 사람의 취향이 담기기 마련이므로. 기준선에 못 미친(내 마음에 아무런 파동을 남기지 못한) 곳이라면 주저 없이 소개하지 않는다.
이번에 찾아간 이엔갤러리는 취향 좋기로 소문난 지인의 추천으로 알게 된 곳이다. 모 유명 잡지사의 편집장님께서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비밀의 공간이니, 주변에 소문내지 말라고 했다는 이곳. 지인도 왜 그런 말이 나왔는지 알만큼 좋았다고 말했다. 신뢰와 기대로 가득 부푼 상태로 평창동의 이엔갤러리를 찾았다.
평창동을 가본 적이 있는가? 부촌이라는 이미지가 강한 이 동네에는 걸어 다니는 사람이 없다. 모두가 차로 이동하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도보로 다닐만한 언덕의 경사가 아니다. 산등성이를 굽이굽이 타듯, 차를 타고 계속해서 올라가야 한다. 평지부터 언덕까지 도보로 30분 내외로 소요되기에 걷기를 택할 수도 있겠으나, 경사로를 감안하면 차를 타는 게 현명하다.
그렇게 택시를 타고 이엔갤러리로 향했다. 택시 기사님께서 길을 헤맨 탓에 평창동 곳곳의 골목길을 구경하며 갈 수 있었는데, 입이 떡 벌이지는 단독 주택이 너무나 많았다. ‘대체 저건 누가 사는 집일까’하는 궁금증이 절로 들만큼 대단한 규모와 범상치 않은 디자인의 건축물이었다.
이엔갤러리 또한 사택을 개조해 만든 공간이다. 1층과 정원은 갤러리 겸 카페로 쓰이고, 2층과 3층은 노부부가 거주한다. 외관상으로는 ‘잘 지어놓은 단독주택’의 축에 속했다. 외/내벽이 모두 콘크리트로 지어져 전반적으로 모던하고 단정한 인상을 주었다. 각진 파사드에 통유리창을 내어 놓으니 개방감이 오롯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정원의 화살표를 따라 카페의 출입구로 들어서는 순간, 산 아래의 평창동이 한눈에 들어왔다. ‘시크릿 가든’이라는 애칭을 지닐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원에는 아름다운 라일락 나무를 비롯해 각종 야생화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하얀색, 보라색, 분홍색, 노란색... 싱그러운 봄을 빛내는 꽃들의 향연이었다. 서울의 여느 카페에서 볼 수 없는 전원적 풍경에 넋을 놓으려는데, 작은 계단이 눈에 띄었다. 한걸음 한걸음 내딛을 때마다 상쾌한 풀내음이 진동했다. 야트막한 언덕의 끝에는 감탄을 뱉지 않고는 못 배길 정도로 아름다운 정원이 있었다. 곳곳에 캠핑 의자가 놓여 있어 이곳에서 커피를 마셔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엔갤러리의 내부는 여느 갤러리형 카페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기다란 나무 테이블과 작업하기 좋아 보이는 사각형의 책상이 여유롭게 놓여 있었고, 벽의 각 면에는 공예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유리부터 도예까지 영국, 일본 등의 예술가의 작품을 구경할 수 있다. 원래는 더 많은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거리두기에 맞게 내부 공간을 조정하며 지금의 형태를 띠게 되었다고 한다.
메뉴의 구성은 더없이 심플하다. 드립 커피, 블루베리 에이드, 차(말린 장미 또는 얼그레이), 과일 주스. 때때로 갓 구운 빵을 판매하기도 한다. 나는 말린 장미 차를 주문하고 야외석에 자리를 잡았다. 바리스타님께서는 곱게 내린 차를 가져다 주시며 조금 춥지 않겠냐고 염려하셨다. 그러면서 햇살 좋은 날에 언덕 위로 올라가 커피를 마시면 참 좋다는 말씀도 해주셨다. 상상하면 절로 미소를 짓게 되는 행복한 풍경이다. 나는 그에 말에 싱긋 웃어 보이며, 맑은 날 이곳을 다시 찾겠다고 답했다.
차를 음미하며 눈앞에 펼쳐진 경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서울 한복판에서 쉽사리 보기 힘든 고아한 정취다. 아파트보다는 주택이 대부분인 동네라, 제각기 다른 생김새의 지붕을 보는 일이 꽤 재미있다. 아까 택시 안에서 흐린 날 찾으면 아쉬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곳은 오히려 조금은 컴컴하고 차분한 날씨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간과 주변 환경이 고요히 숨을 쉬고 있기 때문일까. 내부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도 차분함을 더하는 가사가 없는 뉴에이지 음악이 주를 이뤘다.
공간에 관한 글을 쓰며 어떻게 하면 ‘좋은 공간’을 더욱 풍요로운 언어로 소개할 수 있을까-하는 고민을 한다. 나의 좋음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메신저’로 잘 기능하고 싶기 때문이다. 주변에서 정보를 얻고, 인터넷에서 블로그를 찾아보는 등의 수집 행위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많이 보는 행위’도 큰 공부가 된다. 좋아하는 공간을 부지런히 살피고 헤아리면서, 좋은 것을 골라내는 ‘안목’이 쑥쑥 자라나기를 나는 언제나 소망한다.
이엔갤러리
서울특별시 종로구 평창길 224
02-395-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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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27, 2021
Editor 길보경 instagr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