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조천, “무우수 커피 로스터스”

아름다운 커피 생활을 위하여




폭풍 같은 업무로 초여름을 보내던 어느 날, 출장차 제주로 향하게 되었다. 오랜만에 콧바람을 쐬려니 마음부터 붕 떴다. 1박 2일이라는 짧은 일정이지만 개인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번 여정에서 원하는 것은 딱 한 가지. 숙소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위치한 카페에서 유유자적 머무르기. 그런데 운명처럼, 제주 조천읍의 한 카페를 알게 되었다. 그것도 제주로 떠나기 이틀 전에!



시작은 연희동의 오디너리 핏(Odinary Fit)에서였다. 브루잉 커피를 주문하기 위해 메뉴판을 살펴보는데, ‘무우수 커피 로스터스(Muusu Coffee Roasters)’로부터 원두를 공급받는다고 적혀 있었다.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장소였기에 바리스타님께 여쭤 보았다. 그는 이곳이 제주도에 위치한 로스터리 카페라며, 훌륭한 커피를 내어주는 곳이니 꼭 한번 방문해보라고 권했다. 

때마침 제주 방문을 목전에 앞두고 있어 잘됐다 싶었으나, 멀어서 못 갈 수도 있으니 반가운 티를 내지 못했다. 잠시 후 카카오 지도에 위치를 검색해보고 깜짝 놀랐다. 예약해둔 숙소와 도보로 고작 8분 거리였기 때문이다. 넓디넓은 제주 땅에서 이런 우연을 마주하다니. 내게는 더없이 완벽한 기회였다.



무우수 커피 로스터스는 조천 마을의 어귀에 위치했다. 원형의 공터에 아름드리 우거진 나무가 두 그루 있고, 바로 그 맞은편에 카페가 있었다. 붉은 벽돌의 파사드가 근사하면서도 아늑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보리수나무의 다른 말인 ‘무우수’는 근심이 없는 나무를 의미하는데, 이곳에 방문하는 모든 이들이 걱정 없이 편히 쉬다가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고.



무우수의 첫인상은 여러모로 반전의 반전을 거듭했다. 오디너리핏의 원두 공급처라기에 규모가 꽤 크거나 오래된 로스터리 전문 카페일 줄 알았다. 그러나 이곳은 오픈한 지 일 년이 채 되지 않았으며, 여느 동네 카페처럼 휴먼 스케일에 맞는 아담한 공간이었다. 내부는 차분한 동네 분위기와 매우 잘 어울리는 베이지 톤이었고, 곳곳에 식물을 두어 따스한 감성을 더했다.



무우수의 시그니처 메뉴는 아인슈페너이다. 그밖에 아메리카노, 라떼/ 플랫 화이트, 바닐라 라떼, 에이드, 말차크림이 있다. 필터 커피는 케냐/ 에티오피아/ 콜롬비아/ 콜롬비아 디카페인 등 총 네 종류의 원두를 사용하고 있다. 나와 동행인의 선택은 ‘케냐 니에리 루기 미후티’와 ‘콜롬비아 핀카 부에노스 아이레스’ 필터 커피.



커피가 나오기 전까지 카페 안을 둘러보았다. 바깥과 실내의 인테리어에 균일감이 느껴졌고, 적당한 거리에 테이블을 두어 공간이 넓어 보였다. 몸에 딱 맞는 테이블과 의자가 있어 오래 머물기에도 괜찮을 듯싶었다. 잠시 후, 커피 바에서 바리스타님이 브루잉을 하시는 과정을 찬찬히 지켜보며 커피의 맛과 향을 상상해 보았다. 바리스타님과 스몰 토크를 나누며 비로소 커피가 완성되자 원래 자리로 가져다주셨다.



무우수에서는 커피와 함께 상세정보를 제공한다. 원두의 지역, 품종, 재배고도, 가공과정, 테이스팅 노트 등 커피의 정보를 담은 작은 종이였다. 나의 눈앞에는 완성된 한잔의 커피일 뿐이지만, 이렇게 탄생하기까지의 기나긴 과정을 헤아려 보니 조금 새삼스럽다. 지구 어딘가의 수많은 사람들이 쏟은 정성이 이 작고 검은 액체에 담겨 있다니. 내가 주문한 필터 커피는 케냐의 ‘Nyeri’라는 지역에서 ‘Fully-washed’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레몬, 청사과, 홍차의 맛이 나는 커피였다. 친구의 커피는 콜롬비아의 ‘Armenia, Quindo’ 지역의 해발 1,250m에서 재배된 ‘Castillo’라는 원두인데 오디, 포도, 사탕수수의 맛이었다.



각기 다른 정보로 해석해 본 ‘커피읽기’는 꽤나 흥미롭고 신선한 경험이었다. 내가 마신 커피가 어디에서 어떻게 자랐고, 가공되었는지 그리고 어떤 맛을 함유하고 있는지 알고 마시니 더욱 생생한 풍미와 깊이가 느껴졌다. 무엇보다 재밌었던 부분은 여느 커피에서 맛볼 수 없었던 ‘과일차’맛을 제대로 감각했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커피 맛과는 매우 다른, 대단히 신선하고 균형감 좋은 과일열매 맛이었다. 케냐 커피는 가벼운 홍차의 맛에 가까웠고, 콜롬비아 커피는 포도맛이 강하게 났다. 오디너리핏이 왜 무우수에서 원두를 조달받는지 곧장 수긍이 갔다. 조용한 고수의 느낌. 오랜만에 커피를 능동적으로 마신다는 생각이 들었다.



커피를 연료 삼아 버티던 날들이 있었다. 향과 맛을 천천히 음미하기보다는, 그저 탁한 정신을 일깨우기 위한 수단으로써 커피를 ‘복용’하곤 했다. 인터넷에 떠도는 유머글 중엔 그렇게 마시는 건 ‘가짜 커피’라는 말도 있던데. 일종의 습관처럼 커피로 하루를 시작하는데, 생각보다 유쾌한 시간은 아니다. 그렇다면 ‘진짜 커피’를 즐길 수 있을 때는 언제였을까 돌이켜 보았다. 아무렴 그윽한 커피 향을 즐기며, 천천히 음미하며 마셨던 ‘한 잔’이 아닐까. 때로는 커피 생활에도 노력이 필요하다. 제주의 ‘무우수 커피 로스터스(Muusu Coffee Roasters)’는 커피로 일상이 아름다워질 수 있음을 깨닫게 해 준 곳이다.


+추가 정보
마피스(@cafe_mapiece)는 조천읍에 위치한 또 다른 보석 같은 카페이다. 캘리포니아의 외딴집처럼 이국적인 분위기인 데다 창밖으로는 바다를 조망할 수 있다. 우거진 야자수와 투명한 바다색이 해변 마을의 정취를 한껏 느끼게 해 주기도. 커피는 물론 디저트도 평균 이상의 맛을 자랑한다. 친절한 주인장 부부가 기억에 남는, 아주 괜찮은 카페이니 함께 들러볼 것.





무우수 커피 로스터스

제주 제주시 조천읍 조천11길 22-2
010-2816-2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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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y 20, 2021

Editor 길보경  instagr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