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가좌동, “까페여름”

공간이 기분이 되는 곳


마음이 이유 없이 흐린 날이 있다. 하늘도 내 마음을 대변하는 듯, 청명하던 하늘에 잿빛의 난층운이 짙게 깔리고 이어서 어설픈 빗방울이 하나 둘, 불규칙적으로 떨어지기 시작한다. 비가 내리는 날이면 평소보다 더 감성적이게 되고 혼자 조용히 시간을 보내고 싶어진다. 집에서 좋아하는 영화를 보거나, 평소 읽고 싶었던 책을 읽으며 음악을 듣기도 하고, 나를 위해 정성껏 요리를 해 먹거나 따뜻한 욕조에 근심과 피로를 모두 다 녹이기도 한다. 어쩔 땐 떨어지는 빗소리를 가만히 들으며 내가 가진 우울과 무기력을 잠시 내려놓을 때도 있다.

비 내리는 풍경과 참 잘 어울리는, 조용한 산속 오두막 같은 카페가 있다. 버스정류장이 있는 대로변을 꺾어 골목으로 들어오니 주택들이 늘어서 있다. 이런 곳에 카페가 있을 리 없는데 하며 방심하다 그냥 지나칠 뻔했다. 눈에 띄는 간판 대신 비스듬히 놓인 자전거와 초록 잎이 무성한 식물들이 반기던 곳이었다. 한 잔의 커피와 함께 창문 너머 점점 고이는 물웅덩이를 바라보고 싶어지는 일. 까페여름의 이미지는 내게 그렇게 다가왔다.

흐린 하늘 때문인지 공간은 더욱더 어두웠고 내부에는 책이 많았다. 카페에 가면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일은 거의 없다. 고소한 라떼나 진한 플랫화이트, 아니면 그곳만의 고유한 시그니처메뉴를 선택하곤 하는데, 까페여름에선 왠지 드립커피를 마셔야 할 것만 같았다. 시그니처 블랜딩인 밤의 노래와, 잼이 곁들어진 호밀빵과 바게트를 주문했다.

모든 카페엔 각자의 개성이 묻어있다. 주인의 성격이나 가치관, 원두 볶는 냄새와 사물들의 존재감이 제각기 다 다르기 마련인데, 까페여름은 그 개성이 참 뚜렷했다. 곳곳의 싱그러운 식물들을 바라볼 때면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여름의 느낌이 물씬 났고, 혼자서도 능숙하게 커피를 내리고 빵을 만드는 사장님의 모습에선 담담함이 느껴졌다. 천장에서부터 길게 늘어져있는 자그마한 전등을 비롯해 우드톤 컬러의 따뜻한 감성이 많이 묻어나는 곳이었다. 앉고 싶었던 자리가 비어 그쪽으로 조용히 자리를 옮기고 가져온 책 한 권을 꺼내 읽었다. 잠시 뒤, 귀를 홀리는 음악이 흘렀다. 편안한 여성의 목소리. 강아솔 아티스트의 음악이었다. 시간과 공기의 흐름을 따라 가만히 흐르던 노래. 공간과 음악이 참 잘 어울렸다. 주로 가사가 없는 클래식이 많이 흘렀고 가끔씩 나오던 나긋나긋한 아티스트들의 멜로디가 공간 구석구석을 채우기도 했다. 

호밀빵은 따뜻했다. 온기가 배인 빵 한 조각을 뜯어 살구잼과 코코넛 크림을 살짝 덧칠해 맛보니, 각자의 개성이 묘하게 잘 어우러지면서 색다른 맛이었다. 코코넛 크림은 한 번도 접한 적이 없어 낯설었는데 과하게 자극적이지 않고 은은하게 빵에 잘 스몄다. 시즌 블렌딩인 밤의 노래는 목 넘김이 참 좋았으며 담백하고 그윽했다. 필터커피에 아직 익숙지 않은 나 조차도 편안하고 부드럽게 음미할 수 있었다. 특별히 과일향이 특출난 것도, 그렇다고 바디감이 묵직하고 깊은 커피도 아니었다. 빵과 커피 모두 지나치지 않아 참 좋았다.

원목 가구들의 아늑함과 책의 따뜻함, 음악의 부드러움과 식물의 활기는 머물다 가는 이들의 시간을 늦추는 것 같았다. 공간이 가진 분위기가 그 순간의 기분이 되는 때가 있다. 나 자신이 그 공간에 잘 스며들 때, 어색해하지 않고 편히 잘 쉬다 갈 때가 그렇다. 첫 방문이었음에도 불편함 없이 차분히, 내 시간의 일부를 잘 내어주고 왔다.

테이블은 2인석 3개와 3인석 한 개가 전부였다. 전체적으로 아늑하고 조용한 느낌이나, 공간이 넓지 않아 답답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겠다. 전반적으로 분주하고 활기찬 느낌은 아니라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할 이야기가 많거나 여럿이서 함께 방문하게 된다면, 정적이고 태연한 분위기에 약간 당황할 수도 있다. 그래서 보통 혼자 오는 이들이 많다. 책을 읽거나 다음 일정을 위해 조용히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다 가기도 하고, 무엇보다 주택상권의 특성상 동네 주민들이 많이 왔다 갔다 하는 것 같았다.

까페여름에서 커피가 지닌 의미와 그 매력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내 마음을 이해해 주는 커피. 나를 달래고 위로해 주는 커피. 누군가를 그리워지게 하는 커피. 여유를 선사하는 커피.

누군가에게 커피 한 잔의 의미는 이토록 다 다르겠지만, 오늘 마시는 커피는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한 번쯤 생각해보며 음미하는 것도 좋겠다.




까페여름

서울 서대문구 가재울로 6길 53-3
070-4107-9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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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ezc0

Editor 정채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