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산동, “일출봉”

커피와 위스키를 차분히 음미하고 싶다면



공간 에디터로서 글을 연재할 때마다 가장 어려운 부분은 '어떤 곳을 어떻게 소개할 것이냐'에 관한 것이다. 공간도 마치 사람과 같아서 누구에게나 똑같은 인상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 공간의 외내부적 상황에 따라 방문자에게 좋은 인상을 줄 수도 있고, 정반대일 수도 있다. 물론 모두의 취향을 만족시킬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에디터가 명확한 기준과 언어로 경험을 전달한다면, 독자는 그 공간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끼고 판단할 수 있다고 본다.


매거진 B에서 발행한 JOBS : Editor 편에서 '좋아하는 것으로부터 좋은 것을 골라내는 사람'이 에디터라고 정의했는데, 나는 이와 비슷하게 '폭넓은 취향의 스펙트럼으로부터 나만의 취향을 좁혀갈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 에디터라고 생각한다. 공간을 소개할 때마다 에디터가 어떠한 환경에서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그곳을 경험했는지 주목해주길 바란다.



이번에 방문한 성산동의 '일출봉'은 하루를 차분하게 시작하고 싶어 찾아간 카페이다. 시간이 어떻게 가는 줄 모를 만큼 정신없는 평일을 보내다 보니, 주말만큼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여유를 느끼고 싶었다. 커피는 여유로움을 안겨주는 몇 안 되는 존재니까. 집에서 걸어서 30분 정도에 위치해 산책을 하기에도 적당한 거리였다. 카페 일출봉은 조용한 주택가의 골목에 위치했다. 작은 입간판 위와 지하 계단에 붙은 포스터에는 일출봉의 지향점을 담겨 있었다. '오랫동안 머물다 가셔도 좋습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공간을 즐겨 주세요'.



문을 열며 지하 공간이라 너무 어둡진 않을까 염려되었으나, 이곳은 지상과 곧장 연결되는 문이 있어 해가 잘 들어오는 편이었다. 입구 바로 옆에 놓인 커다란 스피커에서 흘러나온 노래와 공간의 무드가 잘 어울렸다. 전체적으로 블랙 앤 화이트톤을 유지하면서 오렌지빛 조명을 사용해 마냥 차갑지만은 않은 느낌을 자아냈다. 무엇보다 자리 배치가 여유로웠다. 적당한 높이의 원형 테이블과 쿠셔닝이 있는 의자는 오래 머물기에 손색없었다. 내부 곳곳에 놓인 한문 액자나 마른 대나무, 검은색 현무암, 어항 등은 동양적 미를 이끌어 내면서도 일출봉만의 감성을 표현하는 오브제로 보였다.



커피 메뉴를 살펴보니 기본 구성(에스프레소/아메리카노/카페라떼 등)과 더불어 '선라이즈 블렌드 브루잉'과 '먼슬리 초이스'(일출봉이 추천하는 이달의 싱글 오리진 원두)가 있었다. 이달의 싱글 오리진 원두는 '코스타리카 마카우 허니'였다. 논커피 메뉴로는 제주 말차 라떼, 솔티드 초콜릿 라떼, 선라이즈 티/ 에이드류 등이 있었다. 낮술도 가능한 일출봉에서는 위스키와 칵테일을 취급하고 있다. 위스키는 와일드 터키 버번, 글렌드로낙, 보모어, 발베니 등이 있었고, 칵테일은 진토닉과 하이볼 등이 있었다.



드립 커피를 맛보고 싶어 '먼슬리 초이스'를 주문하고, 볕이 환하게 쏟아지는 창가 자리에 앉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바리스타분께서 따뜻한 물 한잔을 내어 주셨다. 날씨가 조금 쌀쌀했던 터라 찬물을 마실 엄두가 안 났는데, 섬세한 배려에 감사했다. 커피를 들고 오셨을 때는 남다른 센스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은쟁반에 커피와 더불어 물티슈 그리고 와이파이 비밀번호가 적힌 명함을 건네주셨기 때문이다. 그 명함에도 포스터 속 문구가 그대로 적혀 있었다. 다 마신 잔은 자리에 두고 가면 된다는 멘트까지도! 섬세하면서도 과하지 않은 친절이었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시자 순간 드립 추출이 맞는지 의문이 들 만큼, 깊고 진한 맛이 지배적이었다. 밸런스가 매우 훌륭했다. 끝에는 과일의 단맛이 맴돌기도 했다.



일출봉은 매달 매장에 틀어 놓는 음악의 플레이리스트를 공유하기도 한다. 일관된 장르의 곡-주로 일렉트로니카-을 선별하는데, 그간 소개했던 곳 중 창신동의 테르트르와 가장 비슷한 느낌의 음악적 취향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소위 패션쇼나 편집샵에서 틀법한 묵직하고 세련된 음악들이랄까. 

내가 머문 당시 나왔던 곡은

 [Kiran Kai - Museli(Feat. Rosie Lowe], [Giveon - Still your best] 등이었다. 

어지럽고 복잡한 세상에서 잠시 OFF 버튼을 누르고 차분한 휴식을 취하고 싶다면 혹은 커피와 위스키를 동시에 즐기고 싶다면 이곳으로.




카페 일출봉 

서울 마포구 월드컵북로27길 7 지하 1층 

010-4313-9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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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mber 30, 2020

Editor 길보경  instagr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