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등포동, “바이닐”

유니크함에서 느껴지는 여백이 매력적인 곳


대학시절 수업이 끝나면 집에 가기 아쉬워 친구와 함께 타임스퀘어에 들러 이곳저곳을 구경하며 돌아다녔다. 칼로리 소모가 최대치에 달할 때쯤엔 근처 식당에서 굶주린 배를 채웠고 백화점 시식코너에 들러 달콤한 아이스크림이나 케이크를 먹기도 했다. 동아리 회식은 무조건 영등포였다. 그때 왜 그렇게 영등포에 자주 갔는지는 모르겠지만 대학생 시절 이곳을 참 많이도 드나들었던 기억이 있다. 



이후 한 번도 이쪽에 발 디딜 계기가 없었다. 더욱이 눈길조차 가지 않았던 이유는 그 근처에 내 마음에 드는 카페나 음식점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중 오랜만에 타임스퀘어에 들릴 일이 있었다. 볼일을 마치고 나와 건물 맞은편에 있는 버스 정류장에서 늘 타던 버스를 기다리던 중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는 선명한 간판이 눈에 띄었다. 



영등포 인쇄소 골목에 위치한 바이닐의 간판은 지나가는 이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만큼 유니크하고 감성적이다. 어둠이 내려앉은 저녁 시간대여서일까. 카페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이 꽤 선명했다. ‘COFFEE’라는 반가운 간판을 보자 나도 모르게 호기심이 일었다. 카페 안쪽을 살펴보니 코로나 2.5단계로 인해서인지 내부엔 손님이 없었고 나 또한 음료를 테이크아웃 할 수밖에 없었다. 




가장 먼저 쇼케이스에 진열된 디저트에 눈이 갔다. 먹음직스러운 도넛과 브라우니 그리고 팡도르가 있었다. 커피 메뉴는 다양했는데 이 날은 얼그레이 아이스티 블랜드를 마셨다. 소문으로는 아메리카노보단 필터커피가, 커피 메뉴보단 밀크티가 맛있다는 평이 많았다. 내부는 밝았지만 조금 차가운 느낌이 들었다. 하얀색과 크림색, 그레이와 실버로 이루어진 인테리어는 공간의 공백을 이끌어내는 듯했다. 손님이 없어서 그렇게 느꼈는지도 모르겠으나 바이닐의 전체적인 분위기 속에는 여백이 있었다. 



한편, 바깥의 어둠과 대조되던 매장의 밝은 분위기는 마치 저 바깥세상은 여기와는 다른 곳 같은 신비스러움을 자아내기도 했다. 실제로 타임스퀘어나 영등포역 주변, 먹자골목 쪽은 매우 분주하고 복잡하기 마련인데 그 울타리 바깥쪽에 이런 조용하고 감각적인 공간이 생기니 여러모로 새로웠다. 그래서인지 단순하고 심플한 듯해도 계속 공간을 둘러보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들었다. 



매장에 앉아 좋아하는 책을 읽거나 글을 쓰며 커피와 디저트를 즐기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해 아쉬웠다. 다만, 매장에선 브런치 세트를 팔고 있어 해당 메뉴를 주문할 경우에 한해 앉아서 즐길 수 있다. 바이닐의 또 다른 매력은 ‘구독 서비스’다. 오너들은 전부 해외 유학파 출신으로 커피와 베이킹에 능수능란하다. 신선하고 좋은 재료만을 사용해 제공하는 그들의 서비스로 인해 방문하는 연령층도 다양하다고 한다. 이에 매장을 자주 찾는 이들을 위한 ‘커피 구독권’과 매월 한정 음료와 베이커리를 판매하는 ‘월간 바이닐’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다.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나 베이커리 매장에서나 볼 수 있을법한 구독 서비스를 제공한다니 참 신선하고 재미있었다.



집으로 돌아와 티를 마셔보았다. 나는 피치플럼 맛을 선택했는데 잘 섞지 않으면 첫 맛에 당황할 수 있다. 밑 부분까지 잘 저어 한 입 마셔보니 얼그레이와 자몽의 향이 잘 어우러지는 게 오묘하고도 색다른 맛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아주 맛있었다. 울퉁불퉁한 모양이 제법 귀여운 화이트초코 도넛은 기분 좋은 단맛이 가득했다. 



제일 기대되었던 것은 만년설을 닮은 데니쉬 팡도르. 테이크아웃 할 경우 아이싱 슈거를 별도로 담아 준다. 또 빵 자체가 밋밋하고 심플한 맛이 아니라 굳이 설탕을 찍어 먹지 않아도 달고 맛있다. 다만 안에 생크림이나 커스터드 크림이 들어 있기를 약간 기대했는데 없어서 좀 아쉬웠다. 그러고 보니 팡도르는 이탈리아에서 크리스마스때 즐겨 먹는 디저트 중 하나라고 한다. 다가오는 크리스마스와 연말, 타임스퀘어의 멋진 분위기를 구경한 뒤 바이닐의 팡도르와 커피로 촉촉한 시간을 맞이해보는 건 어떨까. 





바이닐

서울시 영등포구 문래로183번지 1층 

02-6498-3131

instagram


December 16, 2020

Editor 정채영  instagr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