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터 람스의 미니멀리즘 정신이 담긴 예술 공간
누군가에게 '음악'은 삶 그 자체이다. 뮤지션이나 싱어송라이터가 아니더라도 음악이 일상에 반드시 필요한 존재일 수 있다. 인터넷에서 흔히 떠도는 'OO 없이 살기'에도 사람들이 선뜻 쉽게 소거할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음악이 아닐까. 나 같은 경우 음악이 삶의 필수 요소에 선순위까지는 아니더라도, 아주 중요한 몇 가지 순간이 있다. 바로 출근길 그리고 와인을 마실 때.
출근길에 듣는 노래는 하루의 기분을 좌우하는 만큼 신중을 기한다. 아무 생각 없이 고르기보다는 머릿속에 떠오른 것 중에서 현재의 감정이 묻어나는 곡을 고른다. 오늘 아침에는 콜드의 '미술관에서'를 들었다. 며칠 전 유튜브 알고리즘에 의해 알게 된 노래(유튜브의 순기능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였다. 랜덤 하게 뜬 영상을 클릭한 이유는 썸네일부터 호기심을 자아냈기 때문이다.
텅 빈 전시장에서 어떤 그림을 바라보고 있는 남자의 뒷모습이었는데, 어쩐지 눌러야 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곧바로 시작된 노래를 듣다 음색에 1차 반하고, 영상미에 2차로 반했다. 결국 영상의 처음부터 끝까지 넋을 놓고 보았다. 아름답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한, 하나의 예술작품과 같았다. 미감에 매료된 나머지 나는 Colde라는 사람이 궁금해졌다.
때마침 보그(Vogue Korea)는 콜드의 남다른 감각을 조명한 영상을 공개했다. 웨이비(WAVY)의 아티스트이자 CEO이기도 한 콜드는 회사의 사무실을 직접 꾸몄다고 한다. 놀라웠던 점은 가구 및 오브제 선정과 배치가 여느 디자이너 혹은 건축가 못지않게 뛰어났다는 것이다. 유행처럼 번지는 인테리어보다는 깊이가 있는 안목으로 세심하게 고른 듯 보였다. 그가 말하길, 공간이 사람에게 주는 힘이나 영향이 얼마나 큰지를 어렸을 때부터 느껴 왔다고. 영상의 말미에 콜드는 오피스에 가장 많은 영향을 준 디자이너가 디터 람스(Dieter Rams)라고 말했다. 그는 또 누구란 말인가. 조금만 검색해 보아도 '디자이너들의 디자이너'라고 불릴 만큼 저명한 인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디터 람스의 디자인이라고 한다면 빠지지 않는 키워드는 '미니멀리즘'과 '실용주의'였다. 최소한의 장식과 절제 그리고 기능성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바우하우스(Bauhaus)와 동일한 관점을 견지했다고도 볼 수 있다. 콜드는 디터 람스의 디자인 철학을 존경하는 사람답게 심플하면서도 디테일이 살아 있는 사물을 잘 조합해냈다.
디터 람스의 면면을 살펴볼수록 깊이 탐구해보고 싶은 마음이 일렁였다. 한 예술가에게 닿은 호기심이 또 다른 예술가에게로 이어져, 형용할 수 없는 순간적인 끌림을 느꼈달까? 그러던 중 디터 람스의 작품을 전시해 놓은 공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양재동에 위치한 '4560 디자인 하우스'는 개인 콜렉터가 디터 람스의 50~90년대 디자인 제품을 수집해 놓은 예술 공간이자 카페이다. 이곳은 하이브랜드라는 상가 3층에 입점해 있어, 외견상으로 규모와 내부 분위기를 짐작할 수 없었다.
문이 열리자마자 하얀색으로 가득한 내부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직원분께서는 음료 이용료(15,000원)에 전시 가격이 포함되어 있다고 안내해주셨다. 나는 관람을 마친 후에 주문을 하기로 하고, 길게 이어진 홀을 따라 둘러보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곳의 규모가 예상보다 훨씬 크다는 것을 깨달았다. 브라운사의 수석 디자이너였던 디터 람스의 작품이 족히 100점 이상은 되어 보였다. '아뜰리에'라는 이름의 턴테이블부터 시계, 라디오, 면도기, 칫솔, 다리미, 드라이기, 커피머신, 카메라 등의 생활가전이 종류별로 전시되어 있었다. 같은 제품군은 색깔별로 분류되어 박물관을 연상케 했다.
디터 람스가 몸담았던 브라운(Braun)의 미니멀리즘 디자인 제품이 8개의 구역으로 구분되어 있었는데, 이밖에 애플의 맥킨토시부터 아이맥, 아이팟, 아이북 등의 전자제품도 상당수 진열되어 있었다. 애플사 제품의 변천사를 방불케 하는 수준이었다. 내가 태어나기 이전에 말로만 들었던 맥킨토시를 직접 보다니..! 순간 아찔한 기분에 휩싸였고, 디터 람스나 스티브 잡스가 이곳의 존재를 알았다면 매우 감동했을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개인 콜렉터의 정성스럽고 극진한 사랑(?)은 작업실을 구현해 놓은 방에 집약되어 있었다. 디터 람스의 작업실을 가장 유사하게 모방했다는 이 전시장에는 시대를 초월한 아름다움이 있었다. 과거의 디자인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세련된 모습이었다. 그때 디터 람스의 한마디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Less, but better.' 시간이 흘러도 전혀 촌스럽지 않은, 시간을 초월하는 힘은 '단순함'에서 나오는 듯하다.
전시장의 처음과 끝에는 전망과 채광이 좋은 카페 공간이 있다. 아마도 이곳을 찾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입구와 가까운 곳보다는 맨 끝의 공간을 선호할 것 같다. 테이블의 모양도 다양해서, 취향에 맞는 자리를 고를 수 있었다. 나는 마리아주 프레르 티를 주문해 창가 자리에 앉았다.
따듯한 차를 마시며 대낮에 도심을 가로지르는 차들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이내 멍을 때리거나 공상에 빠지기도 했다. 집에서 두 시간이 넘게 걸리는, 쉽사리 찾기 힘든 곳에 왔지만 피로감보다는 신선한 기쁨이 차올랐다. 평일에 누적된 스트레스가 일순간 날아가는 듯한 가벼운 기분도 들었다. 좋은 디자인의 힘을 믿는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곳.
4560 디자인하우스
instagram
February 23, 2021
Editor 길보경 instagram
디터 람스의 미니멀리즘 정신이 담긴 예술 공간
누군가에게 '음악'은 삶 그 자체이다. 뮤지션이나 싱어송라이터가 아니더라도 음악이 일상에 반드시 필요한 존재일 수 있다. 인터넷에서 흔히 떠도는 'OO 없이 살기'에도 사람들이 선뜻 쉽게 소거할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음악이 아닐까. 나 같은 경우 음악이 삶의 필수 요소에 선순위까지는 아니더라도, 아주 중요한 몇 가지 순간이 있다. 바로 출근길 그리고 와인을 마실 때.
출근길에 듣는 노래는 하루의 기분을 좌우하는 만큼 신중을 기한다. 아무 생각 없이 고르기보다는 머릿속에 떠오른 것 중에서 현재의 감정이 묻어나는 곡을 고른다. 오늘 아침에는 콜드의 '미술관에서'를 들었다. 며칠 전 유튜브 알고리즘에 의해 알게 된 노래(유튜브의 순기능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였다. 랜덤 하게 뜬 영상을 클릭한 이유는 썸네일부터 호기심을 자아냈기 때문이다.
텅 빈 전시장에서 어떤 그림을 바라보고 있는 남자의 뒷모습이었는데, 어쩐지 눌러야 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곧바로 시작된 노래를 듣다 음색에 1차 반하고, 영상미에 2차로 반했다. 결국 영상의 처음부터 끝까지 넋을 놓고 보았다. 아름답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한, 하나의 예술작품과 같았다. 미감에 매료된 나머지 나는 Colde라는 사람이 궁금해졌다.
때마침 보그(Vogue Korea)는 콜드의 남다른 감각을 조명한 영상을 공개했다. 웨이비(WAVY)의 아티스트이자 CEO이기도 한 콜드는 회사의 사무실을 직접 꾸몄다고 한다. 놀라웠던 점은 가구 및 오브제 선정과 배치가 여느 디자이너 혹은 건축가 못지않게 뛰어났다는 것이다. 유행처럼 번지는 인테리어보다는 깊이가 있는 안목으로 세심하게 고른 듯 보였다. 그가 말하길, 공간이 사람에게 주는 힘이나 영향이 얼마나 큰지를 어렸을 때부터 느껴 왔다고. 영상의 말미에 콜드는 오피스에 가장 많은 영향을 준 디자이너가 디터 람스(Dieter Rams)라고 말했다. 그는 또 누구란 말인가. 조금만 검색해 보아도 '디자이너들의 디자이너'라고 불릴 만큼 저명한 인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디터 람스의 디자인이라고 한다면 빠지지 않는 키워드는 '미니멀리즘'과 '실용주의'였다. 최소한의 장식과 절제 그리고 기능성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바우하우스(Bauhaus)와 동일한 관점을 견지했다고도 볼 수 있다. 콜드는 디터 람스의 디자인 철학을 존경하는 사람답게 심플하면서도 디테일이 살아 있는 사물을 잘 조합해냈다.
디터 람스의 면면을 살펴볼수록 깊이 탐구해보고 싶은 마음이 일렁였다. 한 예술가에게 닿은 호기심이 또 다른 예술가에게로 이어져, 형용할 수 없는 순간적인 끌림을 느꼈달까? 그러던 중 디터 람스의 작품을 전시해 놓은 공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양재동에 위치한 '4560 디자인 하우스'는 개인 콜렉터가 디터 람스의 50~90년대 디자인 제품을 수집해 놓은 예술 공간이자 카페이다. 이곳은 하이브랜드라는 상가 3층에 입점해 있어, 외견상으로 규모와 내부 분위기를 짐작할 수 없었다.
문이 열리자마자 하얀색으로 가득한 내부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직원분께서는 음료 이용료(15,000원)에 전시 가격이 포함되어 있다고 안내해주셨다. 나는 관람을 마친 후에 주문을 하기로 하고, 길게 이어진 홀을 따라 둘러보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곳의 규모가 예상보다 훨씬 크다는 것을 깨달았다. 브라운사의 수석 디자이너였던 디터 람스의 작품이 족히 100점 이상은 되어 보였다. '아뜰리에'라는 이름의 턴테이블부터 시계, 라디오, 면도기, 칫솔, 다리미, 드라이기, 커피머신, 카메라 등의 생활가전이 종류별로 전시되어 있었다. 같은 제품군은 색깔별로 분류되어 박물관을 연상케 했다.
디터 람스가 몸담았던 브라운(Braun)의 미니멀리즘 디자인 제품이 8개의 구역으로 구분되어 있었는데, 이밖에 애플의 맥킨토시부터 아이맥, 아이팟, 아이북 등의 전자제품도 상당수 진열되어 있었다. 애플사 제품의 변천사를 방불케 하는 수준이었다. 내가 태어나기 이전에 말로만 들었던 맥킨토시를 직접 보다니..! 순간 아찔한 기분에 휩싸였고, 디터 람스나 스티브 잡스가 이곳의 존재를 알았다면 매우 감동했을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개인 콜렉터의 정성스럽고 극진한 사랑(?)은 작업실을 구현해 놓은 방에 집약되어 있었다. 디터 람스의 작업실을 가장 유사하게 모방했다는 이 전시장에는 시대를 초월한 아름다움이 있었다. 과거의 디자인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세련된 모습이었다. 그때 디터 람스의 한마디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Less, but better.' 시간이 흘러도 전혀 촌스럽지 않은, 시간을 초월하는 힘은 '단순함'에서 나오는 듯하다.
전시장의 처음과 끝에는 전망과 채광이 좋은 카페 공간이 있다. 아마도 이곳을 찾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입구와 가까운 곳보다는 맨 끝의 공간을 선호할 것 같다. 테이블의 모양도 다양해서, 취향에 맞는 자리를 고를 수 있었다. 나는 마리아주 프레르 티를 주문해 창가 자리에 앉았다.
따듯한 차를 마시며 대낮에 도심을 가로지르는 차들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이내 멍을 때리거나 공상에 빠지기도 했다. 집에서 두 시간이 넘게 걸리는, 쉽사리 찾기 힘든 곳에 왔지만 피로감보다는 신선한 기쁨이 차올랐다. 평일에 누적된 스트레스가 일순간 날아가는 듯한 가벼운 기분도 들었다. 좋은 디자인의 힘을 믿는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곳.
4560 디자인하우스
010-7412-45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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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ruary 23, 2021
Editor 길보경 instagr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