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희동, “개인주의”

아름다운 개인주의적 시간을 위하여



주말의 포문을 여는 하나의 의식이 있다. 금요일 낮이면 퇴근을 하고 동네 카페로 향하는 것이다. 잔무가 남은 경우에는 카페에서 일을 보거나, 그저 아무 생각 없이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내곤 한다. 보통은 집에서 걸어서 15분 거리 정도 떨어진 카페들을 번갈아 찾아간다. 카페 개인주의도 후보군에 속한 곳이었는데, 때마침 인스타그램에 '코로나 겨울방학'을 갖겠다는 소식이 올라왔다. 아쉽지만, 기약 없는 개학을 기다려야 했다.



봄의 초입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홍제천을 따라 개인주의 앞을 지나가 보았다. 이게 웬일! 나른한 오후의 햇살을 고스란히 머금은 채로 화사하게 열려 있었다. 통유리창 안으로 카페 내부를 살피자, 전부터 앉고 싶었던 자리가 비어 있었다. 이번 주말의 시작이 어쩐지 예감이 좋다는 느낌을 가득 안고 카페로 들어갔다.



붉은 외벽과 대비되는 모노톤의 내부 벽이 깔끔하면서도 정제된 인상을 주었다. 곳곳에 포인트처럼 배치된 가구와 식물이 따스하고 포근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 도면이 그려진 포스터나 책장에 빼곡히 늘어선 각종 디자인 서적이 눈에 띄었다. 공간에도 어떤 리듬이 흐른다면, 강약 조절 없이 부드럽고 여유로운 음이 들려올 것만 같다.



'개인의 자아와 생각이 존중되는 사회, 이기주의 아닌 개인주의'라는 슬로건으로 운영되는 이 공간은 인테리어 디자인 스튜디오(Prepero)의 사무실 겸 카페이기도 하다. 5~6석의 자리를 보유한 카페 공간의 가장 안쪽에는 사무실이 마련되어 있었다.



메뉴는 에스프레소, 아인슈페너, 라떼 등의 커피 메뉴와 에이드, 쑥 밀크티, 미숫가루 등의 논커피가 있다. 메뉴판 바로 옆에 찻잎이 담긴 통이 있었는데, 독특하게도 말린 호박과 쑹궁이잎이었다. 순간 호박의 달큼한 맛이 끌려, 말린 호박 티를 주문했다. 방문했을 당시에는 디저트류는 비스코티가 준비되어 있었지만, 때로 마들렌과 휘낭시에도 판매하는 듯했다.



내가 머물고자 했던 자리는 홍제천변이 한눈에 담기는 창가 자리였다. 창밖으로 길을 따라 늘어선 가로수,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 물가에서 노니는 새들이 보였다. 아름다운 자연에 압도되려는 찰나, 저 멀리 그림 한 점이 눈에 들어왔다. 김환기의 <매화와 항아리>라는 작품으로, 백자와 매화가지가 소담하게 어우러진 모습이었다. 개인적으로 김환기 화백을 깊이 애정했기에, 더없이 반가웠다. 



그간 숱하게 지나갔던 개천길이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아서 몰랐다. 개천 위의 대교를 지탱하는 기둥마다 김환기를 비롯한 장욱진, 이중섭 등의 작품이 걸려 있었다. 마치 창 속의 창을 보듯, 풍경 안의 예술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뭐랄까, 카페 이름처럼 개인주의적인 시간을 깊게 누리는 기분이 들었다.



"살아 있는 시간은 길이의 문제가 아니라 깊이와 밀도의 문제다. 프루스트는 이것을 알고 있었다."



요 근래 나의 절친 P언니가 건네준 존 버거의 <그리고 사진처럼 덧없는 우리들의 얼굴, 내 가슴> 속 한 구절이다. '살아가는 시간 속에서 매 순간을 깊이 있게, 촘촘하게 살아가고 싶은 마음'을 지닌 나로서는 이 문장이 오래 기억에 남았다. 호박차를 호로록 마시며 뭉근한 사유의 시간을 보내니, 카페를 나설 때 어쩐지 홀가분한 기분이 들었다. 개인주의적 시간을 아름답게 보내고 싶은 분들에게 권하는 곳.






개인주의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연희동 659 1층

02-336-2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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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il 6, 2021

Editor 길보경  instagr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