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발산동, “케익크”

정적인 시간을 선물해 줄 달콤한 공간


일상의 소중함을 느끼게 되는 요즘이다. 영화관에 다닥다닥 붙어 앉아 영화를 보며 팝콘을 먹는 일,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친구와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는 일, 퇴근 후 맘 편히 늦게까지 맥주잔을 기울이며 동료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일. 마음만 먹으면 행할 수 있는 일들이 이제는 조심스럽다.“혹시 앉아서 책을 읽어도 될까요?” 혼자 카페에 가면 음료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아 자연스레 테이블 위에 책 몇 권을 꺼내 읽곤 했는데, 이젠 음료를 주문할 때 직원에게 확인 차 물어보거나 양해를 구하곤 한다.

‘주말엔 또 어떤 카페를 가볼까?’라는 물음 하나로 일주일을 버텼던 나는 카페 내에서 취식이 안된다는 말에 가장 큰 영향을 받은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삶의 낙이라면 낙이고 소소한 힐링이자 취미이며, 스트레스 제거에 가장 효과적인 카페 투어를 한 동안 하지 못해서 참 아쉬웠다. 늘 가던 카페에서 음료를 주문하고 기다리는 동안 내가 앉았던 자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면 이런저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친구들과 하하호호 호탕하게 웃으며 대화하는 행동이 이제는 배려 없는 과잉행동이라는 인식이 짙어지는 요즘이다.



매장 내 취식이 가능해진 이후 예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동네 카페를 방문했다. ‘케익크(Keic.)’는 생긴 지 얼마 안 된 따끈따끈하고 포근한 디저트 전문숍이다. SNS를 통해 케익크의 사진을 볼 때마다 홍제천에 위치한 ‘뚤리‘가 생각났다. 화이트와 그레이의 심플한 벽과 따뜻하고 부드러운 우드 테이블의 조화는 우유와 에스프레소처럼 사랑스러운 조합이다. 은은한 라떼 색을 닮은 테이블을 마주하자 달콤한 케이크 한 조각을 먹으며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마구마구 일었다.



케익크(Keic.)는 금, 토, 일요일에만 운영한다. 영업시간은 다소 까칠하지만 사장님의 인상은 매우 정답고 친절하다. 내부는 4인 테이블 하나, 2인 좌석 하나가 전부인 넓지 않은 공간이었지만 테이블 간 간격이 널찍해 전체적으로 여백이 있어 답답하지 않고 여유로웠다. 개인적으로는 큰 4인 테이블보단 2-3인이 앉을 수 있는 테이블을 몇 개 더 갖춰 놓으면 좋을 듯했지만, 주중에 진행하시는 베이킹 클래스를 위해 홀 한가운데에 큰 테이블을 비치해 놓으신 것 같았다. 주방 도구와 오븐, 작업대가 훤히 보이는 긴 카운터는 매력적이고 시원한 인상을 주었다. 카운터 쪽에도 스툴을 몇 개 비치해 두면 더 트렌디하고 느낌 있는 공간이 될 것 같다.



메뉴판을 살피니 커피 메뉴는 없었다. 사장님께선 아직 커피 메뉴를 정식으로 준비하지 못해 죄송하다며 양해를 구하시기도 했다. 쇼케이스에 진열된 형형색색의 아기자기한 디저트들을 보니 도무지 뭘 먹어야 할지 혼란이 일었다. 평소 단호할 정도로 결정을 잘하는 나지만 이날 만큼은 깊은 고민에 빠져 한동안 허리를 구부린 채 쇼케이스를 위, 아래, 좌우로 훑었다. 달달한 디저트가 먹고 싶어 클래식 초콜릿 케이크를 골랐다. 음료는 바닐라와 다크 럼의 향이 더해진 바닐라 밀크를 선택했다. 음료의 가짓수가 적어 선택에 제한이 있었지만 별로 문제 되지 않았다. 마실 거리는 아이스티와 밀크티, 보틀 음료(태핑 타피르)가 있다.



화이트와 그레이톤의 조합은 자칫하면 썰렁하거나 차가운 느낌을 주기 마련인데 케익크의 공간은 그런 느낌과는 거리가 멀었다. 쇼케이스에 얌전히 놓인 디저트 때문인 건지, 창밖으로 보이는 가로수들의 평안함 때문인 건지, 그도 아니면 매장 이곳저곳을 흐집어 놓는 잔잔한 멜로디의 컨츄리 팝 때문인 건지. 선율을 따라 넋 놓고 바라본 풍경에 마음이 절로 풍성해졌다.



주문한 케이크와 음료가 나왔다. 예상보다 클래식 초콜릿 케이크는 많이 달지 않았다. 시트 안의 생크림이 아주 부드러웠고, 케이크 위를 덮은 초코 크림의 질감이 독특했다. 예전에 먹었던 연남동 ‘루모스 케이크‘의 초코 크림과 질감이 비슷하단 생각이 들었다. 처음 맛보는 바닐라 밀크. 한 입 넘기는 순간 동심으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아이들이 참 좋아하겠단 생각이 들 만큼 상냥하고 귀여운, 그런 아기자기한 맛이었다. 초콜릿 케이크와의 궁합이 어떨까 궁금했는데 개인적으로는 정말 좋았다. 이제껏 달콤한 케이크에는 아메리카노나 라떼가 천생연분이라 생각했는데 이 아이도 참 매력적인 맛이구나.라고 생각했다.



차분하고 정적인 분위기와 몇 개 없는 테이블로 인해 여럿이 방문하기보단 혼자 오기를 추천한다. 음료와 케이크가 모두 자극적이지 않아 아이와 함께 마주 앉아 도란도란 달콤한 시간을 보내는 손님들도 많을 듯하다. 머무는 시간 내내 사장님께선 분주히 또 하나의 올망졸망한 디저트를 만들고 계셨다. 똑같은 시간 속에서 각기 다른 생각을 하곤 하지만 같은 공간에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 무언가를 공유하고 있단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영혼이 알아차리는 일. 아무쪼록 2021년에는 모두가 그런 일들을 겪길 바란다. 물건을 살 때, 일할 때, 공간에 머물 때, 처음 마주한 순간 내 마음 저 깊은 곳에서부터 ‘이건 내 거다 ‘, ‘이건 내 일이다’, ‘여긴 딱 내 공간이다 ‘와 같은 두근거림을 겪는 날들이 많아지기를.




Keic.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일산로 368번길 20

0507-1347-65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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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ruary 5, 2021

Editor 정채영  instagr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