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광동, "카페 기면민"

그 누군가의 안온한 시간을 위하여 



성남을 방문한 건 두 번째다. 지난 9월, 카페 취재차 성남을 방문했던 일이 있었는데 새로운 동네 특유의 그 낯선 느낌이 참 좋았다. 일적인 것에 있어서는 규율과 관습 깨는 걸 싫어하면서도 새로운 동네나 길목을 탐방하는 일은 참 좋다. 그래서 여행을 좋아하고 그 지역의 낯선 분위기를 사랑한다. 

뉘엿뉘엿 해가 서쪽으로 완전히 넘어간 어스름한 저녁, ‘카페 기면민’에 도착했다. 서울을 이리저리 오가는 동안 많은 버스와 지하철을 탔지만, 진한 벚꽃색의 8호선을 탄 적은 없었다. ‘남한산성입구역’이라는 생소한 역에 내려 서먹한 상점과 음식점을 지나 오른쪽 골목으로 들어섰다. 새벽안개처럼 연약한 빛의 가로등이 우뚝 서 있고, 좁디좁은 골목의 고요함이 느껴졌다.



‘카페 기면민’이라고 적혀있는 흰 간판이 눈에 띄었지만 정작 입구가 어딘지 찾을 수가 없었다. 바로 옆에 위치한 회색 철문을 통해 들어가려 했지만 자물쇠로 굳게 잠겨있었다. 도대체 어디로 들어가야 하는 걸까. 생각보다 일찍 조기 마감을 하신 건가? 

쌓인 의문을 뒤로하고, 사장님께 전화를 걸었다. 침착하고 자상한 목소리로 그쪽 문이 아니라 뒤를 돌아보면 올라오는 문이 있다고 하신다. 다세대주택 1.5층을 개조한 카페 기면민. 시작부터 정신 없었지만 느낌이 좋았다.



크림톤의 벽지와 보늬밤 색을 닮은 원목 테이블 그리고 마치 은방울꽃이 매달려 있는 것 같은 조명까지. 공간에 대한 사장님의 애착이 강하게 느껴졌다. 자리를 잡고 앉아 있으면 사장님께서 따뜻한 물과 메뉴판, 물티슈와 디저트 이미지를 볼 수 있는 자그마한 나무판을 주신다. 이곳의 메뉴판은 참 기발하고 귀엽다. 들어오는 문의 모양을 닮은 메뉴판인데, 손잡이를 잡고 열면 카페 메뉴가 보인다. 



아이스 카페오레와 마롱 카시스 롤케이크를 주문한 뒤 구석구석을 조심히 둘러보았다. 마감 시간대에 가깝게 와서인지 매장에 손님은 나뿐이었다. 카운터 앞엔 쿠키, 스콘, 휘낭시에 등의 구움과자가 진열돼있고 주방 쪽엔 토스트기와 드리퍼, 그라인더 등이 놓여있다. 주문과 동시에 소량의 원두를 갈고 타이머를 세팅한 후 조용히 드립을 내리시던 남사장님. 딱히 커피를 전문적으로 배운 적은 없지만 일본에 거주하실 때 잠깐잠깐씩 배우며 공부하다 보니 커피가 좋아지게 되셨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카페 기면민은 남사장님의 성함을 따 온 이름이다. 이곳은 예쁜 부부가 운영하는 카페인데 모두 일본에 약 7년 정도 거주하셨다고 한다. 여사장님은 도쿄 요요기 공원 근처의 아담한 카페 ‘Afterhours’에서 일을 하시며 그곳 사장님께 디저트 만드는 법을 전수받으셨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디저트에 대한 기대가 매우 컸다.



‘마롱 카시스 롤케이크’는 이름에서부터 알 수 있듯 보늬밤을 넣어 만든 롤케이크다. 생크림과 밤의 단맛으로 물리거나 느끼하지 않게 카시스 잼이 함께 곁들여 제공되는데, 내 개인적인 입맛에는 많이 달지 않아 잼 없이 먹는 게 훨씬 좋았다. 

아이스 카페오레를 한 모금 맛본 순간, 흠칫 놀랐다. 이제껏 먹어본 라떼 중에 top3에 들 정도로 맛있었다. 기분 좋은 은은한 단맛이 느껴져 ‘혹시 시럽을 좀 넣으셨나?’ 싶어 여쭈니 소량의 수제 시럽을 첨가하신다고 한다. 일본의 라떼는 좀 밍밍한 느낌이 들어 한국인의 입맛에 맞게 고소하면서도 약간의 당도를 조절하셨다고.



카페라는 공간이 좋아 시작하게 되셨다는 카페 기면민. 얌전히 놓인 아기자기한 소품들과 달갑게 흐르는 클래식한 음악들은 도쿄 기치죠지의 골목에서나 마주할 수 있는 카페 이미지를 연상시켰다. 남녀 사장님의 친절함과 내부의 고요함 그리고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그 조용한 시간이 한데 모여 안온함을 만들어냈다. 주말에 여럿이 함께 모여 조금 떠들썩한 공간이 될지라도 이곳 특유의 따스한 분위기는 여전할 것 같다. 



풍요로 가득 찬 마음을 한껏 안고 편안히 머문 뒤 자리에서 일어나 두 사장님께 커피와 디저트가 정말 맛있었다고 조심스레 전했다. 새로 찾은 공간이 마음에 쏙 들 때 감사한 마음을 짧게나마 쪽지에 전하곤 하는데, 카페 기면민의 각 테이블 서랍엔 자그마한 방명록이 있다. 고민도 좋고, 하고 싶은 이야기나 커피와 디저트의 맛 등 그 무엇을 적든 다 좋다. 



요 근래 일상 속에서 종종 결핍을 생각했다. 갖고 싶은 물건, 돌이키고 싶은 관계, 나에겐 없고 그들에겐 있는 무언가. 그러나 카페 기면민의 롤케이크와 커피를 마시는 동안 내가 가진 것들에 다시 한번 감사했다. 맛있는 디저트와 향긋한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시간, 이렇게 좋은 공간과 좋은 사람을 알게 된 그런 우연에 감사한 저녁이었다. 





카페 기면민

경기 성남시 중원구 산성대로468번길 3 1층

0507-1377-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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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mber 20, 2020

Editor 정채영  instagr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