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남동, “휘겔리후스”

오늘 하루, 휘겔리한 시간을 보내보자


연휴 첫날, 예정에 없던 카페를 찾았다. 연남동 ‘휘겔리후스(hyggelig hus)’였다. 건물 2층에 위치한 휘겔리후스는 덴마크어로 ‘아늑한 집’을 뜻한다. 몇 년 전, 덴마크인들의 신조라 불리는 ‘휘게(Hygge)’가 한창 떠올랐었을 때 그들의 일상을 잠시 엿보았다. 간소하고 느린 것을 추구하는 그들. 화려한 레스토랑보다 벽난로가 있는 소박한 공간을 좋아하는 점, 크리스마스이브에 좋아하는 차를 마시며 창가에 앉아 여유를 만끽하는 등 휘게 라이프는 실로 단순하고 일상적인 것에 초점을 둔다.



휘겔리후스의 첫인상은 갤러리 같기도, 핀터레스트(pinterest)에서만 보던 어느 해외 인플루언서의 아늑하고 세련된 룸 같기도 했다. 2층 계단을 올라 문을 열고 들어가면 입구에 걸린 다채로운 색의 그림이 먼저 반긴다. 벽에 걸린 그 그림을 기준으로 양옆으로 따스한 볕이 들어오는 방이 있는데, 처음 방문하는 나로선 어느 쪽으로 가야 하는 지 다소 헷갈렸다. 곧 옆방에서 테이블을 정리하시던 사장님께서 친절히 카운터로 안내해 주었고, 카운터 맞은편에도 ‘예쁘다’ 할 정도의 또 다른 룸이 있었다.




휘겔리후스는 드립커피와 차, 간단한 디저트 그리고 와인을 판매한다. 해방촌 카페 ‘오랑오랑’의 원두를 사용한다. 나는 산미가 없고 고소하면서도 견과 맛이 나는 ‘고빈다’를 주문했다. ‘사비나’는 자몽 뉘앙스가 있어 산미가 조금 있고 뒤에 시럽 같은 질감이 딸려온다.

공간은 거실, 서재, 작업실로 구성돼 있다. 모든 공간은 편안한 집처럼 자유로이 오갈 수 있고 사진촬영 또한 가능하다. 곳곳을 찬찬히 둘러보는 데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카운터 바를 마주한 거실은 큼지막한 소파와 함께 다소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분위기가 물씬 난다. 혼자보단 동행인이 있을 때 함께 머물면 좋다. 거실 옆 서재는 원목 인테리어 특유의 차분하고 고풍스러운 느낌이다. 벽장을 채운 여러 책들과 소품, 와인병과 커피 원두 그리고 한쪽 벽에 걸린 액자까지. 말 그대로 서재 느낌이 풀풀 났다.



서재 옆방은 다소 모던하면서도 차분한 느낌이다. 말 그대로 누군가의 ‘방’에 머무는 것 같은 기분. 정돈되어 있는 체스판과 혼자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테이블, 도란도란 근황을 묻고 답하는 얘기가 어울릴 것 같은, 매력적인 공간이다.

작업하기 좋은 1인용 테이블에 앉아 이런저런 모습들을 카메라에 담고,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었다. 넓은 공간에 혼자 머무르니 이런 게 진정한 휴식, 힐링, 소확행이구나 하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사장님께선 방문하는 이들이 한결 가벼운 시간을 보내길 원하시는지, 음악 소리도 나지막이 조율해 주시고 열린 문을 살며시 닫아 주셨다. 좋은 향이 가득했고 나른한 재즈만이 오후의 시간을 덮고 있었다.



공간만큼 매우 좋았던 커피. 핸드드립이라면 종로의 ‘나무사이로’ 커피를 정말 좋아하는데, 휘겔리후스의 고빈다는 매우 충격적인 맛이었다. 고소하고 너티한 맛이 훅 들어와 ‘와, 이게 뭐지?’라는 물음으로 계속 마시고, 또 마셨다. 첫 맛의 너티함은 시간이 지날수록 물에 희석돼 다소 아쉬웠지만 정말 맛있는 한 잔이었다. 디저트는 화이트 초콜릿을 입은 보리쿠키와 따뜻하고 쫀득한 맛이 재미있던 시나몬 고구마 찹쌀과자를 맛보았다. 특히 화이트 초콜릿 보리쿠키가 인상적이었는데, 어떻게 이런 디저트를 만들게 되었는지 귀엽기도 하고 신기하고, 무엇보다 맛있었다.



휘겔리후스에 방문한다면 서재에 비치돼 있는 ‘휘게 라이프’를 한 번 읽어보길 추천한다. 실제 곳곳에 놓인 책들은 자유롭게 읽을 수 있으니 굳이 무겁게 책을 들고 오지 않아도 된다. 감각적인 매거진, 포토북, 에세이 등 웬만한 도서는 어느 정도 있으니 나처럼 책을 좋아하는 이들에겐 아무쪼록 지루하지 않은 시간이 될 듯하다.


휘게는 동사 형태도 있고 형용사 형태도 있다. 형용사 형태로는 무언가를 ‘휘겔리(hyggeligt)’하다고 표현한다. “정말 휘겔리한 거실이군요!“, ”만나서 정말 휘겔리합니다.“, ”휘겔리한 시간 보내세요!“처럼 말이다. <휘게 라이프 중>

느리고 간소한 것, 새것보다는 오래된 것, 화려한 것보다는 단순한 것. 일상 속 소소한 즐거움과 자연 속에서 찾는 휘겔리한 시간. 올여름이 지나기 전 한 번 느껴보길 바란다.




휘겔리후스

서울 마포구 성미산로 127 2층

0507-1376-47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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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ust 10, 2021

Editor 정채영  instagr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