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캐롤이 흐르는 영국식 티카페
내가 이 공간을 가지고 하고 싶은 것. 내가 이루고 싶은 것. 사람들이 내가 설계한 공간에 와서 무엇을 느끼고, 어떻게 사용하면 좋겠는지에 대한 바람. 그것을 우리는 흔히 컨셉(concept)이라고 부른다.
건축가 김선아의 저서 <여기가 좋은 이유>의 일부분이다. 컨셉은 다른 말로 가치관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것은 비단 공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닌, 창작활동 전반에 걸친 유일무이한 정체성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컨셉 없는 카페란 자기 자신이 무얼 좋아하고, 어떤 것에 관심이 있고 어떤 일을 할 때 즐겁고 마음이 편해지는지 모르는 상태와도 같다.
이런저런 카페를 다니며 ‘여기는 식물이 돋보이는 곳이구나.’,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꾀했네’ 또는 ‘이 공간은 굉장히 빈티지스럽다.’와 같은 명확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낯선 공간에서 애매모호한 감정이 일렁일 때 이렇게 선명한 감상을 받으면 괜스레 이 공간과 이곳을 만든 이에게 더욱 정감이 간다.
‘캐롤티하우스’는 이러한 컨셉이 명확한 곳 중 하나다. 외관부터 ‘여기는 영국 시골 마을에 위치한 자그마한 티룸입니다.’를 내포하고 있다. 실제 카페가 위치한 길목에선 이국적인 고요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주변은 껄끄러운 소음 하나 없이 조용하고 깔끔해서 마치 항구의 어느 조그마한 마을을 방문한 것 같다. (파도 소리와 갈매기는 없었지만 왠지 모르게 그런 느낌이 들었다.) 외부에는 자그마한 정원이 딸린 2-3인용 테라스 석이 마련돼 있다. 내부는 빈티지스러움이 가득하다. 대표는 영국을 여행하며 접했던 여러 홍차의 좋은 기억을 되살려 이곳 티룸에 자연스레 녹여냈다. 그래서인지 티문화와 티푸드에 흠뻑 빠진 그의 아기자기함을 단번에 느낄 수 있었다.
티카페 답게, 주요 메뉴는 티다. 커피 메뉴는 드립커피가 전부. 깔끔함과 심플함이 매력적인 블랙티부터 달큼한 향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스윗티, 카페인이 첨부되지 않은 차와 밀크티까지, 범위가 다양하다. 커피에 익숙한 나는 드립커피를 마실까 고민했지만 얼그레이(베르가못) 밀크티를 선택했다. 밀크티는 적당한 당도의 깔끔한 맛이 좋았고, 얼음이 든 잔을 따로 제공해 주어 밍밍해질 염려 없이 천천히, 차분히 음미할 수 있었다. 다양한 티메뉴에 상응하듯 티푸드의 종류도 각양각색이다. 티푸드 하면 빠질 수 없는 스콘과 빅토리아케이크는 고정으로 선보이는 듯하고 허니케이크, 초콜릿케이크 등 날마다 달라지는 디저트도 있다.
매장 스피커에선 빈티지하고 클래식한 크리스마스 캐롤이 자주 흘렀다. 대표가 크리스마스의 포근한 설렘을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먹구름 짙게 깔린 우중충한 날씨였음에도 가게 안은 즐겁고 따뜻한 기류가 넘쳐흘렀다. 라즈베리 잼이 잔뜩 올라간 빅토리아케이크는 달달한 밀크티와 함께 즐기기에도 괜찮았다. 버터크림 또한 느끼하거나 물리지 않아 포크로 한입 두입 기분 좋게 떠먹었다. 혼자 느긋이 차를 마시고 케이크를 먹으며 책을 읽는 동안, 달달하고 상냥한 잎차의 향이 코끝을 자극했다. 계속해서 새로운 메뉴를 테스트하고 그날에 어울리는 차를 우리시는 듯 했다.
바닥에 깔린 자주색 러그와 은방울꽃을 닮은 조명,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는 각종 빈티지 식기들, 냉장고에 붙어 있는 빛바랜 엽서와 사진, 인심 좋은 미소의 아줌마와 강아지가 박힌 동그란 접시, 선반 아래 자유로이 매달린 컵과 두툼하고 감성적인 책들. 그러고 보니 어디선가 이 장면을 본 듯한 기억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작년 파리를 방문했을 때 들린 영국식 찻집이었다. 폭풍우를 뚫고 급하게 들이민 몸뚱이에 주인 할머니는 온화하게 웃으며 ‘Hello’를 건넸다. 그곳에서 따뜻한 홍차를 마시고 클로티드크림과 잼이 곁든 바삭한 스콘을 먹었다. 캐롤티하우스를 방문했을 때 여행의 소중했던 기억 하나를 끄집어낼 수 있어 좋았다. 과연 공간의 힘이란 이런 게 아닐까 싶다.
인심 좋은 영국인 할머니가 운영하는 'The English Shop'
벽을 장식한 수많은 빈티지 소품들
캐롤티하우스와 많이 닮은 곳
캐롤티 하우스
인천 강화군 강화읍 남문안길 31
0507-1423-9510
Instagram
October 25, 2021
Editor 정채영 instagram
따뜻한 캐롤이 흐르는 영국식 티카페
내가 이 공간을 가지고 하고 싶은 것. 내가 이루고 싶은 것. 사람들이 내가 설계한 공간에 와서 무엇을 느끼고, 어떻게 사용하면 좋겠는지에 대한 바람. 그것을 우리는 흔히 컨셉(concept)이라고 부른다.
건축가 김선아의 저서 <여기가 좋은 이유>의 일부분이다. 컨셉은 다른 말로 가치관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것은 비단 공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닌, 창작활동 전반에 걸친 유일무이한 정체성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컨셉 없는 카페란 자기 자신이 무얼 좋아하고, 어떤 것에 관심이 있고 어떤 일을 할 때 즐겁고 마음이 편해지는지 모르는 상태와도 같다.
이런저런 카페를 다니며 ‘여기는 식물이 돋보이는 곳이구나.’,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꾀했네’ 또는 ‘이 공간은 굉장히 빈티지스럽다.’와 같은 명확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낯선 공간에서 애매모호한 감정이 일렁일 때 이렇게 선명한 감상을 받으면 괜스레 이 공간과 이곳을 만든 이에게 더욱 정감이 간다.
‘캐롤티하우스’는 이러한 컨셉이 명확한 곳 중 하나다. 외관부터 ‘여기는 영국 시골 마을에 위치한 자그마한 티룸입니다.’를 내포하고 있다. 실제 카페가 위치한 길목에선 이국적인 고요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주변은 껄끄러운 소음 하나 없이 조용하고 깔끔해서 마치 항구의 어느 조그마한 마을을 방문한 것 같다. (파도 소리와 갈매기는 없었지만 왠지 모르게 그런 느낌이 들었다.) 외부에는 자그마한 정원이 딸린 2-3인용 테라스 석이 마련돼 있다. 내부는 빈티지스러움이 가득하다. 대표는 영국을 여행하며 접했던 여러 홍차의 좋은 기억을 되살려 이곳 티룸에 자연스레 녹여냈다. 그래서인지 티문화와 티푸드에 흠뻑 빠진 그의 아기자기함을 단번에 느낄 수 있었다.
티카페 답게, 주요 메뉴는 티다. 커피 메뉴는 드립커피가 전부. 깔끔함과 심플함이 매력적인 블랙티부터 달큼한 향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스윗티, 카페인이 첨부되지 않은 차와 밀크티까지, 범위가 다양하다. 커피에 익숙한 나는 드립커피를 마실까 고민했지만 얼그레이(베르가못) 밀크티를 선택했다. 밀크티는 적당한 당도의 깔끔한 맛이 좋았고, 얼음이 든 잔을 따로 제공해 주어 밍밍해질 염려 없이 천천히, 차분히 음미할 수 있었다. 다양한 티메뉴에 상응하듯 티푸드의 종류도 각양각색이다. 티푸드 하면 빠질 수 없는 스콘과 빅토리아케이크는 고정으로 선보이는 듯하고 허니케이크, 초콜릿케이크 등 날마다 달라지는 디저트도 있다.
매장 스피커에선 빈티지하고 클래식한 크리스마스 캐롤이 자주 흘렀다. 대표가 크리스마스의 포근한 설렘을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먹구름 짙게 깔린 우중충한 날씨였음에도 가게 안은 즐겁고 따뜻한 기류가 넘쳐흘렀다. 라즈베리 잼이 잔뜩 올라간 빅토리아케이크는 달달한 밀크티와 함께 즐기기에도 괜찮았다. 버터크림 또한 느끼하거나 물리지 않아 포크로 한입 두입 기분 좋게 떠먹었다. 혼자 느긋이 차를 마시고 케이크를 먹으며 책을 읽는 동안, 달달하고 상냥한 잎차의 향이 코끝을 자극했다. 계속해서 새로운 메뉴를 테스트하고 그날에 어울리는 차를 우리시는 듯 했다.
바닥에 깔린 자주색 러그와 은방울꽃을 닮은 조명,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는 각종 빈티지 식기들, 냉장고에 붙어 있는 빛바랜 엽서와 사진, 인심 좋은 미소의 아줌마와 강아지가 박힌 동그란 접시, 선반 아래 자유로이 매달린 컵과 두툼하고 감성적인 책들. 그러고 보니 어디선가 이 장면을 본 듯한 기억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작년 파리를 방문했을 때 들린 영국식 찻집이었다. 폭풍우를 뚫고 급하게 들이민 몸뚱이에 주인 할머니는 온화하게 웃으며 ‘Hello’를 건넸다. 그곳에서 따뜻한 홍차를 마시고 클로티드크림과 잼이 곁든 바삭한 스콘을 먹었다. 캐롤티하우스를 방문했을 때 여행의 소중했던 기억 하나를 끄집어낼 수 있어 좋았다. 과연 공간의 힘이란 이런 게 아닐까 싶다.
인심 좋은 영국인 할머니가 운영하는 'The English Shop'
벽을 장식한 수많은 빈티지 소품들
캐롤티하우스와 많이 닮은 곳
캐롤티 하우스
인천 강화군 강화읍 남문안길 31
0507-1423-9510
Instagram
October 25, 2021
Editor 정채영 instagram